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의 ‘내로남불’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17-07-23 11: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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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문재인 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선포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국민이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이자 정치의 실질적 주체로 등장하는 시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도 "촛불정신을 구현하고 국민주권의 헌법정신을 국정운영의 기반으로 삼는 새 정부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물론 환영이다. 그런데 ‘내로남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국민주권시대’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정계복귀하면서 강조한 말이다. 당시 그는 제7공화국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국민주권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고 지지를 호소했고, 이를 실천해 나가기 위해 ‘국민주권 개혁회의’라는 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손 전 대표의 이 같은 움직임을 “정략적”이라고 매도하며 제동을 걸고 말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뒤늦게 '국민주권시대'를 선포한다니 얼마나 황당한 노릇인가. 그래서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좋은 방향의 ‘내로남불’은 그래도 괜찮다.

문제는 옳지 못한 일에 대해서도 그런 형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고위공직자 배제 기준인 ‘5대 인사원칙’(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병역 면탈)이 훼손되는 과정이 특히 그렇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대선 경선을 치르면서 “병역 면탈,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논문 표절, 한두 개씩은 갖고 있어야 마치 장관 자격 있는 것처럼 그렇게 되지 않았느냐, 이제 바꿔야 한다”며 소위 ‘5대 인사 배제원칙’을 내세웠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지명한 국무총리 및 장관 등 고위공직자 후보 22명 중 15명이 이를 위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인사청문회를 후보자 흠집내기 식으로 진행하니 정말 좋은 분들 중에 고사한 분이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이 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하던 말과 너무나 흡사했다.

실제 박 전 대통령은 “청문회가 신상털기 등으로 흐르면서 많은 후보자가 자리를 고사했다”고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대통령의 얼굴만 박근혜에서 문재인으로 바뀌었을 뿐, 똑같은 소리를 내고 있는 셈이다.

국회 역할론에 대한 불신도 박근혜정부나 문재인 정부는 크게 다르지 않다.

빅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국회가 법안 처리에 소극적으로 나서 국정 운영을 지연시킨다는 불만을 수차례 제기한 바 있다. 심지어 작년 1월 정부 업무보고에서는 여야 이견으로 경제 관련 법안과 테러방지법 처리가 늦어지자 “국회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니까 국민들이 나서서 바로 잡으려는 것”이라고 국회를 질책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 역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한 뒤 5부 요인을 초청한 자리에서 “국내에 들어오니까 국회나 정치 상황이 딱 그대로 멈춰 있다”고 국회를 꼬집었다.

이른바 ‘청와대 거수기’ 노릇을 하는 여당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정부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을 향해 '청와대 거수기'라며 비판을 쏟아낸 바 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이 집권당이 된 뒤에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주요 공직자 후보들에 대한 각종 의혹이 도마에 올랐는데도 민주당은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오히려 야당의 지적을 정치공세로 치부하면서 오히려 ‘청와대 거수기’ 노릇을 하고 있다.

실제 낙마한 안경환 전 법무부장관 후보자와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에 대해서 민주당은 어떠한 비판 목소리도 공식적으로는 낸 바 없다.

그래서 전 정권 시절 여당을 향해 '거수기', '나팔수' 등으로 비판해왔던 민주당이 정작 여당이 되고난 후에는 청와대를 향한 비판은커녕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타인에게 엄중한 잣대를 들이댔던 만큼 자신에게는 보다 더 엄중한 잣대를 적용하게 맞다.

모쪼록 문재인정부가 손 전 대표의 뜻을 받아들여 뒤늦게나마 ‘국민주권’시대를 선포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다만 그 출발점은 제왕적대통령제를 혁파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분권형으로의 개헌을 방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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