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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9대 대통령선거 투표일을 불과 2개월여 앞둔 지난해 3월 3일,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되는 개헌론에 대해 “지금은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고 일축한 바 있다.
당시는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제왕적대통령제의 폐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시점이었다. 촛불시위에서는 특정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제왕적대통령제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국민의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시위현장에는 “이게 나라냐”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시민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나라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로인해 당초 개헌논의를 거부했던 안희정 충남지사마저 “현재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중앙집권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효율적 시스템을 만들자는 논의는 거부할 수 없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런데도 유독 문재인 대통령만 개헌반대 입장을 고집했던 것이다.
그러자 민주당내 개헌론자들이 들고 일어섰다. 사실 민주당에는 이원집정부제라 불리는 분권형 개헌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개헌파 의원들이 상당수였다.
실제 당시 민주당 개헌파 의원 34명은 개헌에 소극적인 문재인 후보를 겨냥, “개헌에 대한 입장을 빨리 밝히라”고 압박했다. 앞서 민주당 개헌파 의원들은 그해 2월에는 자당 연구원이 만든 ‘개헌저지전략보고서’를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제왕적대통령제를 종식시키는 분권형 개헌에 문재인 후보가 동의하고 그런 방향으로의 개헌을 약속해야 한다고 압박한 셈이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민주당내에서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제왕적 권한을 지닌 대통령의 눈 밖에 날 것이 두려워 ‘쉬쉬’하고 있는 민주당 내 개헌파 의원들, 그들의 비겁한 침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민주당은 ‘제왕적대통령제’라 불리는 5년단임제를 ‘황제대통령제’라고 하는 ‘4년중임제’로 바꾸려는 문 대통령을 향해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당론을 사실상 ‘4년중임제’로 정하는 등 문 대통령의 ‘황제대통령제’ 개헌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오늘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개헌 협상에 소요되는 시간을 제외하고도 개헌안 공고, 국민투표 실시 등을 감안하면 1분 1초를 아껴 써도 시간이 촉박하다"며 "이번 주를 국회 내 개헌안 마련을 위한 골든타임으로 보고 당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3월 중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마련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특히 우 원내대표는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13일 자문안을 마련해 대통령에 보고할 예정인 만큼 국회 차원의 논의도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국회에서 개헌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대통령이 개헌안을 낼 수도 있다는 뜻을 강력 시사했다.
물론 이에 대해 야당이 반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실제로 지난 28일 국회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 특별위원회 산하 헌법개정소위원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의 반대 목소리가 일시에 터져 나왔다.
한국당 안상수 의원은 "대통령이 발의하는 헌법안은 수정이 불가능하다. 국회에 와서 통과될 가능성이 제로"라며 "그것이(정부 개헌안) 통과되면 국회의원직 그만두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바른미래당 소속 이태규 의원은 "만약 대통령께서 독자적으로 개헌안을 발의하시고 또 여당도 발의했는데 이 내용이 다르면 너무 웃기는 것이고, 또 같으면 따로따로 발의할 이유도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심지어 현 정부와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 정의당 소속 심상정 의원도 “대통령께서 (개헌안을) 발의 안 하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할 정도다. 그 이유에 대해 심 의원은 "대통령이 발의하시는 순간 개헌은 물 건너간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민주당 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정부안 발의 준비지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전혀 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지 않다. 특히 제왕적대통령제 종식을 위해 국회개헌특위에서 활동하던 민주당 의원들조차 ‘4년 중임제’ 추진에 대해선 아예 입을 닫고 있다.
물론 높은 국정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는 문 대통령에 대해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높은 국정지지도는 다른 대안이 없는 데 따른 반사이득일 뿐, 결코 국정운영을 잘해서 얻은 지지율이 아니다.
따라서 지금 제대로 된 내부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경우, 현 정권의 지지율이 붕괴되는 건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부디 민주당내 개헌파들은 비겁한 침묵을 깨고 일어나 ‘7공화국’시대를 열어 나가자는 목소리를 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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