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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강력한 개헌의지를 표명해 왔다.
급기야 문 대통령은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에 정부 개헌안 마련을 지시했고, 지난 13일에는 자문특위로부터 개헌안을 보고 받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문 대통령은 6월 13일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기 위해 3월 21일까지 국회 발의가 없으면, 직접 발의하겠다고 구체적인 기한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진행과정 등을 볼 때에 문 대통령의 개헌의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개헌 절차는 발의ㆍ국회 표결ㆍ국민투표 순서로 이뤄진다. 대통령이 발의하면 국회 표결 자체까지는 이뤄질 전망이다. 법적으로 60일 이내에 표결해야 한다. 그러나 현 의석상황에서 개헌안 통과 가능성은 사실상 0%에 가깝다.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려면 국회 재적의원(293명) 3분의 2 이상(196명)이 찬성해야 하는데 자유한국당(116명)만 반대해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른미래당(30명)은 물론 평화민주당(14명)과 정의당(6명)마저도 정부개헌안 발의에 부정적이다.
실제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을 ‘관제개헌’으로 규정하며 강력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바른미래당도 "개헌은 청와대가 나서서 될 일이 아니다"라며 “국회가 개헌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과의 연정을 희망하고 있는 민주평화당은 물론 여권에 우호적인 정의당마저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오는 21일을 대통령 개헌안 발의일로 잡았다. 황당하다.
오죽하면 민주평화당 조배숙 대표는 “안될 걸 알면서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거렸고, 정의당 헌법개정특위 위원장인 심상정 의원은 “청와대의 개헌안 발의는 오히려 개헌을 좌초시키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겠는가.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은 야당의 반대로 국회통과가 안 될 것을 빤히 알면서도 개헌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셈이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문 대통령이 야당설득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개헌완수’가 그 목적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은 무엇을 위해 이토록 화려한 ‘개헌 원맨쇼’를 펼치는 것일까?
어쩌면 5월 이전에 열릴 가능성이 있는 북미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8일 밤(현지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진행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발표문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5월까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만날 것이라는 파격적인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북미정상회담은 북미협상의 시작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게 북미협상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는 장면은 곧 김정은 독재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면이 될 것이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그날 김 위원장으로부터 완전한 항복 선언, 즉 확실한 비핵화의 로드맵을 받아내려 할 것이다. 그게 안 되면 더 이상의 북미협상은 없다. 이로 인해 오히려 북미간의 갈등이 더욱 증폭될 것이고, 그 여파가 한반도에 미칠 것은 불 보듯 빤하다.
그러면 북미대화를 이끌어낸 문 대통령을 향해 “핸들을 제대로 잡았다”고 칭찬하던 민심도 돌아설 것이고, 그의 섣부른 ‘남북대화론’이 도마 위에 오를 수도 있다.
문대통령 입장에서는 그런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개헌과 같은 파괴력 있는 이슈가 나와 줘야 하는 것이다.
북미대화가 잘 되면, 굳이 개헌을 밀어붙일 필요가 없는 것이니 야당에게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하면 되는 것이고, 잘 안 되면 개헌 이슈로 자신을 향해 불거질지도 모를 ‘남북대화 책임론’을 잠재울 수 있으니, 어쨌거나 손해 볼 것 없는 셈이다.
물론 그런 의도로 개헌을 띄우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게 믿고 싶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쯤에서 정부 개헌안 발의의지를 접고, 국회에 개헌 논의를 맡겨주기 바란다. 그래야 개헌에 대한 대통령의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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