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이승만-박정희 망령 되살리나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18-03-19 14: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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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의 강력한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통령 개헌안을 오는 26일 발의한다고 한다.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은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은 26일 (대통령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참모진들에게)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을 지시했다"며 "국회가 개헌에 합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드리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개헌의 핵심인 권력구조개편에 대해선 현재의 제왕적대통령제를 그대로 유지하되 단지 대통령의 임기를 ‘5년 단임’에서 ‘4년 연임’으로 3년 연장이 가능하도록 바꾸었을 뿐이다.

이게 이른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개헌안이라니 착잡하기 그지없다.

우리나라에 제왕적대통령제를 도입한 사람은 이승만이다.

해방 후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은 애초 임시정부처럼 의원내각제로 고안됐었다.

실제로 1940년 이후의 임시정부는 지금의 국회에 해당하는 임시의정원이 주석 및 국무위원에 대한 선출권은 물론 탄핵권과 불신임 결의권까지 지닌 의회 우위의 의원내각제의 양상이 강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승만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제헌헌법은 대통령 중심제로 변질되고 말았다. 그게 바로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제왕적대통령제’의 시발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승만 정권은 ‘제왕적대통령제’의 폐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결국 4.19혁명과 함께 막을 내렸다. 바야흐로 ‘2공화국’ 시대가 열린 것이다.

1960년 4·19 혁명으로 등장한 제2공화국은 그해 6월 15일 개정된 헌법에 따라 명실상부한 의원내각제 정부구조를 갖추게 됐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5·16 쿠데타가 발생했고, 의원내각제는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가 다시 대통령제를 채택한 탓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는 ’이승만 망령의 부활‘이자 ’박정희 망령의 부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제왕적대통령제는 되풀이 되는 ‘대통령 오욕의 역사’를 통해 이미 그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대통령 자리를 거쳐 간 이는 모두 11명이다. 그런데 내각책임제 하의 대통령(윤보선)과 과도기 대통령(최규하)을 제외한 9명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가 개인 비리나 친인척 비리로 곤욕을 치렀다.

실제로 노태우는 4000억원에 이르는 비자금 조성 혐의로 헌정사상 처음으로 검찰에 소환됐으며, 전두환은 검찰 소환을 거부하는 골목성명을 내고 고향인 경남 합천군으로 내려갔지만, 이내 체포돼 서울로 압송됐다. 노무현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던 중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21일 검찰에 소환된 후 구속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금 뇌물수수협의 등으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YS와 DJ는 비록 자신이 수사를 받거나 구속되지는 않았으나, 재임 중 자기 자식이 비리 혐의로 사법 처리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문재인 대통령도 안심할 수 없다.

이제는 ‘대통령 오역의 역사’라는 불행한 연결고리를 끊어내야만 한다. 그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끈 ‘촛불혁명’ 당시 많은 참가들이 “이게 나라냐”라는 피켓을 손에 들고 국가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만큼. 문재인 대통령이 그 민의를 받들어 제왕적대통령제를 종식시키고 독일식 내각제로 개헌하겠다고 선언만 하면 되는 일이다.

거듭 말하지만 대통령제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제도이고, 내각제는 임시정부→4.19혁명으로 이어지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의 개헌 방향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를 바 없지 않는가. 만일 임시정부→4.19 혁명의 뒤를 잇는 내각제 개헌이 아니라,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뒤를 제왕적대통령제 개헌이라면 그건 촛불민심에 역행하는 것으로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승만은 자신에 대한 국민의 지지만 믿고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발췌개헌’을 했으며, 박정희 역시 같은 방식으로 ‘유신개헌’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이 이런 불명예스러운 개헌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데 당장 내일부터 사흘간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이 국민에게 공개된다고 하는 데 걱정이다. 그 방식이 이승만의 개헌이나 박정희의 개헌 양상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이승만과 박정희도 당시 야당의 반대를 무시한 채, 국민의 지지만 믿고 발췌개헌과 유신개헌을 강행했다. 하지만 그 결과 그들 모두 비극적인 종말을 고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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