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신뢰가 동맹의 기본이다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6-03-19 09:3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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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선 전 경기희망포럼 사무총장


이솝 우화 ‘양치기 소년’은 어린 시절 누구나 한두 번은 접했을 법한 이야기다.


다만 이 단순한 이야기가 전해준 도덕적 교훈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성인이 된 지금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생존 철학으로 확장돼 있음에랴.

그런 관점에서 오산 기지 F16 훈련과 ‘사과’ 논란에서 비롯된 균열의 전조는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다. 북한의 침략과 현대전의 급격한 양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례적으로 실시돼 온 ‘자유의 방패(FS: Freedom Shield)’ 한미연합 훈련이 올해의 경우, 한미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 끝에 야외 기동훈련 규모가 대폭 축소된 점은 솔직히 동맹의 근간인 ‘연합 방위력’의 균열이 시작된 게 아닌지 우려된다.


특히 지난 2월 발생한 두 건의 사건은 한미 간 신뢰의 토양이 얼마나 척박해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2월 18일과 19일,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서 발진한 F16 전투기들이 서해상에서 대규모 공중 훈련을 실시했다. 이에 민감해진 중국 측이 대응 출격했고, 방공식별구역(CADIZ) 인근에서 양측이 대치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문제는 당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던 안규백 국방장관이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항의하자, 이에 미 사령관이 ‘사과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커졌다.


국방부 역시 브리핑에서 이를 기정 사실화한 데 대해 24일 밤 주한미군 사령부가 입장문을 통해 “우리는 대비 태세의 유지와 관련해 사과하지 않는다”며 이례적으로 강경한 반응을 보이고 나선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 측에 사전 통보가 이미 이뤄졌음을 상기시키며, 오히려 한국 군 수뇌부에 보고를 누락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미군 측이 동맹국 장관의 항의에 공개적으로 ‘사과한 적 없다’고 반박한 데 대해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선 심각한 신뢰의 위기라는 지적이 따른다.

한국 무인기의 북한 침투 사건에 유감을 표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 9·19 군사합의의 선제적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에 대해 주한미군이 ‘대비 태세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이라고 표현하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다.


2018년 문재인 정권 당시 체결된 9·19 군사합의는 이후 북한에 의해 수없이 파기되었다. 창린도 포격, NLL 이남 미사일 도발, 수도권 무인기 침투, 최근의 GPS 교란과 오물 풍선 살포등 단 한 순간의 멈춤 없이 대남 도발을 이어갔다.

이런 북한을 상대로 ‘비행금지구역 복원’을 선언한 우리 정부를 두고 적의 ‘선의’에 국가 안보를 맡기고 군의 생명줄인 ‘정찰과 감시’ 능력을 스스로 마비시키겠다고 약속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군사적 대비 태세를 유지하려는 우방국 훈련에 사과를 요구하고, 적의 도발에는 오히려 방어망을 걷어치우겠다고 나서는 우리 정부를 미국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입으로는 ‘한미동맹 강화’를 외치지만, 행동으로는 동맹의 가치를 훼손하는 이중적 태도가 계속된다면 미국이 더는 신뢰하지 못하겠다고 등을 돌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번영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안보의이 결정적 계기가 됐던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된다.


"이제 우리 후손들이 누대에 걸쳐 이 조약의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던 이승만 대통령 말씀대로 한미동맹은 70여 년간에 걸쳐 한국 경제 성장의 든든한 안보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2026년 3월 현재 우리 정부는 ‘철통같은 방어 태세’의 기본을 뒤흔드는 행보로 국제사회 불신을 자초하는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새로운 세계 질서 수립과 전략적 이니셔티브에 대해서도 침묵하거나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이재명 정부가 공공연하게 친중 노선을 지향한다는 의구심 등 국제사회에 불신을 쌓아 올리고 있다.


겉으로는 동맹을 말하면서도 미국이 한국을 배제한 채 새로운 대아시아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이제는 한국 스스로 국력에 맞게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일당독재 체제인 중국이나 3대 세습 왕조인 북한은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할 대상이지, 추종하거나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의 존재는 될 수 없다.


미국의 궁극적 목표가 이란의 핵 위협으로부터 동맹을 보호하는 것과 동시에, 전 세계를 상대로 새로운 패권 질서를 구축하려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있고 이를 위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는 미국 정책의 핵심 과제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될 명제다.

신뢰의 중요성을 다시 가슴에 새기도록 하자.


동맹 간의 신뢰가 의심받는 순간 국가의 안위는 바람 앞의 등불이 된다. 핵무장한 북한의 도발이 상시화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의 선의를 구걸하는 비굴함이 아니라, 우방국과의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압도적인 대비 태세라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신뢰가 무너진 동맹 관계는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이라도 안보의 기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정부의 각성을 촉구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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