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기막힌 ‘기명투표’ 꼼수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3-07-25 11: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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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표결 방식을 기명투표로 바꿔야 한다는 김은경 혁신위원장의 제안에 힘을 실어주었다.


비록 책임정치를 구현한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걸었지만 왜 하필 지금인가를 생각해보면 그 답은 명백해진다.


지금은 쌍방울그룹 대북 송금 의혹과 관련해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진술 번복’을 계기로 변곡점에 접어든 시점이다.


특히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민주당 안팎에선 ‘이재명 8월 위기설’도 돌고 있는 마당이다. 위기설은 검찰이 곧 제출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 대표 구속영장과 맞물려 있다. 야당은 검찰이 오는 8월 16일 임시국회 개회에 맞춰 구속영장을 청구해 ‘체포동의안 정국’을 조성할지도 모른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체포동의안 표결이 필요 없는 비회기 중이 아니라 일부러 국회 회기 중에 영장을 청구해 민주당의 전열을 흔들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되면 어찌 될까?


현재는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지난 2월과는 정치적 상황이 매우 다르다. 이 대표는 지난달 19일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저를 향한 정치 수사에 대한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라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도 최근 의원총회에서 비록 ‘검찰의 정당한 영장 청구’라는 전제를 달긴 했으나, 불체포특권를 포기한다는 결정을 내린 상태다.


김은경 혁신위의 1호 혁신안 역시 ‘불체포특권 포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부결해버리면 이 대표의 ‘공언(公言)’은 ‘실언(失言)’이 되는 것이고, 김은경 혁신위의 1호 혁신안은 공언(空言)이 되는 셈이다. 특히 여당이 ‘방탄 정당’ 프레임을 뒤집어씌워도 대응할 방법이 없게 된다.


그런데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기발한 꼼수를 생각해 냈다.


지난 21일 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한 국회 본회의 투표방식을 현행 무기명에서 기명으로 변경하는 내용 등을 담은 혁신안을 발표한 것이다.


그러자 이재명 대표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책임정치라는 측면에서 투표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 필요하다"며 "입법 사안인데 조기에 기명투표를 선언하는 게 필요하다"고 혁신위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 행태가 참으로 가관이다.


이게 왜 문제인가.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표결 방식을 기명투표로 바꾸면 누가 찬성투표를 했는지 알게 되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들에게 좌표 찍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 강성지지층이 무서운 이런 상황에서 누가 소신 있게 찬성표를 찍을 수 있겠는가. 현 상황에서 체포동의안 공개 표결이 이뤄지면 ‘수박(이 대표에 반대하는 민주당 정치인)’ 색출 용도로 악용될 것은 불 보듯 빤하다.


이는 야당 의원들의 소신 투표를 봉쇄해 오히려 민주주의 퇴행을 불러올 뿐이다.


오죽하면 민주당 이원욱 의원이 "동료 의원 체포영장 청구에 대해 이름을 밝히라는 선동"이라고 꼬집었겠는가.


여당의 공세는 더욱 거칠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다시 청구될 것이 두려워 야당에서 이탈표가 나오지 않도록 의원들의 표결을 감시하는 장치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이철규 사무총장은 "개딸들에게 좌표를 찍어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겠다는 후안무치의 끝판왕"이라며 “누가 반대표를 던졌는지 감시하겠다는 발상이나 다름이 없다”라고 했다.


이처럼 북한 체제의 공개 투표와도 기명투표를 제안한 혁신위나 그에 동조하는 이재명 대표의 의도는 누가 봐도 명백하다. 그 목적은 ‘선동’이고 ‘감시’다.


기명투표 방안을 두고 책임정치라는 가면을 쓴 ‘정치적 꼼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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