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이재명 방탄’ 비대위 추하다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2-08-25 12: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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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회가 ‘기소시 당직정지’ 및 ‘권리당원 투표 우선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당헌 80조와 14조 개정에 급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 조항의 개정은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줄곧 제기돼 왔음에도 이재명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될 것이 빤한 상황이어서 무난히 중앙위원회를 통과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렸었다.


그런데 이변이 발생했다.


실제로 24일 민주당 최종 의사결정기구인 중앙위가 당헌 80조와 14조 개정 안건에 대해 투표한 결과, 재적 중앙위원 566명 중 267명(47.35%)이 찬성해 과반에 못 미쳤다. 부결된 것이다.


민주당이 출범한 2016년 이후 당무위원회까지 거친 안건이 부결된 건 처음이다.


중앙위원회는 당 소속 국회의원과 기초자치단체장, 지역위원 등 약 500여 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데 일반 당원이나 국민이 잘 모르는 당 내부 상황을 비교적 잘 아는 사람들의 집합체다.


그들이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지적을 받는 당헌 개정이 결코 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에 대해 이재명 의원과 당권경쟁을 벌이는 박용진 의원은 “중앙위의 부결 결과는 민주당 바로 세우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라며 “당내 민주주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맞다. 지금 민주당에서 논의되고 있는 당헌 개정은 누가 뭐래도 피의자 신분인 이재명 한 사람을 위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아무리 그가 유력한 당권 주자라고 해도 그를 위해 당헌을 함부로 개정해선 안 된다는 중앙위원들의 판단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데 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당헌 80조 개정안만을 별도로 재추진하는 방침을 세웠다는 황당한 소식이 들린다.


‘이재명 일병 구하기’에 나선 비대위가 당헌 80조 개정안을 중앙위에 재상정한다는 것이다.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당헌 80조 문제는 이미 (절충안으로) 해결된 것이기 때문에 당무위와 중앙위를 무난히 통과할 것”이라고 자신하기도 했다.


가관이다.


애초 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는 80조 1항을 ‘기소’가 아닌 ‘하급심의 금고 이상 유죄 판결 시’ 직무 정지로 완화하려다 “방탄용 위인설법”이란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도 비대위는 해당 규정은 유지하되, 정치보복 등으로 판단될 경우 직무 정지 조치를 취소할 수 있는 주체를 기존 당 윤리심판원에서 당무위로 수정하는 절충안을 밀어붙였다.


80조 1항을 3항으로 무력화하는 ‘꼼수’를 선택한 것이다. 실제로 윤리심판원은 구성원 가운데 당외 인사가 절반을 차지하는 등 독립성이 강해 당 대표가 좌지우지하기 어렵지만, 당 대표가 의장으로 있는 당무위는 대표의 입김이 절대적이다.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재명 의원이 기소되더라도 당무위를 통해 당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꼼수’ 절충안을 제시한 셈이다.


결국, 당헌 80조 개정은 ‘기소되더라도 이재명은 당 대표직을 내려놓지 않아도 된다’라는 규정을 만들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마저도 중앙위원회에서 부결되자 비대위가 재상정 형태로 ‘이재명 방탄용’ 당헌 개정을 완수하겠다고 하니 얼마나 기막힐 노릇인가.


대체 비대위가 이처럼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비판을 받는 당헌 개정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거기엔 이재명 의원의 의중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이는 이 의원 자신이 조만간 기소될 것이란 점을 알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신이 지은 죄를 자신만큼 잘 아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기소되더라도 어떻게든 당 대표직을 유지해 자신의 방패막이로 사용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물론 그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래선 안 된다. 일사부재의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비대위 역시 이재명 의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그 자체가 비대위의 월권이기도 하다. 단언컨대 훗날 가장 추악한 당 지도부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경고하거니와 민주당은 이재명 한 사람만을 위한 정당이 아니다. 아무리 그가 유력한 당권 주자이고, 최고위원들마저 친명계 의원들이 싹쓸이하다시피 한다고는 하지만, 민주당은 ‘민주’당이지 ‘이재명’당은 아니다. 이건 상식이다. 이런 상식에서 벗어나는 순간 민주당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민주당 비대위는 지금 선택해야 한다.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재명을 선택하고 국민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것인지 이재명을 버리고 국민의 지지를 받을 것인지 양자택일(兩者擇一)할 때가 됐다. 당헌 80조 개정 여부가 그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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