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의 ‘자진 출두’ 꼼수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3-05-02 13:56:49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주필 고하승



더불어민주당의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관련해 송영길 전 대표가 2일 오전 검찰에 자진 출두했다. 검찰이 부르지도 않았는데도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쇼를 연출한 것이다.


물론 검찰은 이날 조사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며 그를 그대로 청사 로비에서 돌려보냈다. 이는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송 전 대표는 앞서 지난달 24일 프랑스 파리에서 귀국한 뒤 25일 검찰에 자진 출석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 일정상 아직 조사 대상이 아니다"라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서면 진술서를 제출하라"라고 ‘출석 불가’를 통보했었다.


따라서 송영길 대표는 자신이 자진 출두하더라도 검찰 조사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점을 사전에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기습 출두’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날 "검찰은 저를 소환하지 않고 주변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라며 "검찰은 주위 사람을 괴롭히지 말고 저 송영길을 구속해주시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자신은 ‘돈 봉투’를 알지 못했다며 ‘꼬리 자르기’를 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아마도 이정근 녹취록과 압수수색 등을 통해 자신의 연관성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이미 검찰은 송 전 대표 자택과 후원조직에 이어 경선캠프 관계자들까지 압수수색을 하면서 돈의 흐름을 밝혀나가고 있는 마당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차피 빠져나가기 어렵다면, 자신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지지자들의 동정심이라도 얻어보려는 얄팍한 노림수일지도 모른다. 지지자들의 항의로 검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기를 내심 바라고 있을 것이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겉으로는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듯하나 실제로는 검찰 수사를 방해하고 여론을 호도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얄팍한 출두쇼”라고 비판한 이유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검찰의 구속영장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즉 향후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 등에 대비해 '수사를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라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쇼라는 말이다.


실제로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는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명분이 되고, 법원도 그걸 이유로 영장을 발부하는 일일 종종 발생한다.


특히 검찰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려면 확실한 물증을 제시해야 하는데 아직은 기초수사 단계여서 검찰 수사가 그 단계까지 나아간 것은 아니다. 더구나 현재의 범죄 혐의보다 더 무거운 혐의가 나타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실제로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9400만 원 이상이 살포된 정황이 포착된 이상, 즉 플러스 알파(α) 자금이 확인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지금 송영길 전 대표를 검찰에 불러 조사한다면, 그 조사는 ‘알파’까지는 나아가지도 못할 것이고, 증거 부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송영길 전 대표의 노림수는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범죄 피해자도 자기 마음대로 수사 일정을 정할 수는 없다. 만일 그런 생각에서 검찰에 기습 출두한 것이라면 이는 특권 의식의 발로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특히 그런 ‘위장 탈당쇼’나 ‘꼼수 출두쇼’로는 돈 봉투 게이트의 진실을 숨길 수 없다.


지금 송 전 대표가 해야 할 일은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 연루자로 지목된 윤관석·이성만 의원 등과 함께 죄를 자백하고, 돈을 받은 의원들의 실명을 공개하고 국민과 당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어차피 출국금지가 된 마당이라 해외로 도망갈 수도 없지 않은가.


차라리 민주적인 선거를 혼탁하게 만들고, 당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죄의 대가를 달게 받겠다는 고백으로 법의 선처를 바라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송영길에게 어울리는 고사성어(故事成語)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이 아니라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