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가하면 최정옥은 그녀 나름대로 승리감에 흠뻑 젖어있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어도, 그 말이 자신에게 던져준 말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그녀였다.
강은자-양숙희의 팬티를 손아귀에 넣은 기분 이야말로 천하를 몽땅 삼켜버린 그런 기분이었다. 이만성과 자신의 사이를 가로 막아온 장벽, 그것을 뿌리째 뽑아 멀찌막이 팽개쳐 버리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할 수 있는 무기-그게 다름 아닌 팬티였다.
요컨대 그것은 이만성으로 하여금 그녀들에게서 싫어도 등을 돌릴 수밖에 없게 하는 물적 증거라는 얘기다. 감히 귀신도 범접 못할 비장의 무기인 셈이었다.
강은자-양숙희가 몸을 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숫처녀 행세하면서 이만성에게 꼬리를 흔들었을 경우, 최정옥은 문제의 팬티를 익명으로 이만성에게 우송하기로 작심을 하고 있었다. 설마하니 이만성이 일본군인들에게 정조를 지키려고 결사 반항한 최정옥인데도 거들떠보지 않는 마당에, 머리가 1백80도로 돌아버리지 않았을진대 괴한들에게 짓밟힌 그녀들의 유혹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그날 밤, 최정옥은 흥분이 지나쳐 꼬박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말이 하룻밤이지 석 달 열흘보다도 더 길고 지루한 밤이었다. 그러나 지루한 밤은 지나가고 새로운 하루, 호기심과 기쁨으로 채워져야 할 새로운 하루는 그녀에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버린 것 같은, 낭패와 절망감을 왕창 안겨주었다.
푸른하늘의 날벼락이라 한들, 그보다 더 최정옥을 아픔과 슬픔과 두려움과 뉘우침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을 것인가? 1945년 10월24일 오후 3시께였다. 강은자는 동네 뒷산 소나무 가지에 목매달아 죽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런가하면 양숙희는 방안에서 예리한 칼로 손목의 동맥을 잘라 자살하려다 미수로 그쳤지만 뒤늦게 가족들에 의해 발견되어 병원으로 실려갔었으나 회생되지 않았다.
‘빵과 과자의 미끼를 내건 살인 덫에 치여 희생의 제물이 되었다.’라는 요지의 짤막한 유서를 그녀들은 남겨놓고 있었다. 신문도 방송도 없었지만,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삽시간에 동네 안팎으로 짜하게 펴졌다. 강은자-양숙희의 집안에서 땅을 치며 울부짖는 통곡소리가 하늘높이 솟구치고 있었다.
당사자의 집 뿐 아니라 온 동네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 발칵 뒤집혔다. 당사자들의 가족은 슬픔에 잠겨 경황이 없었지만, 운칠동 안에서는 남녀와 노소할 것 없이 모든 주민들이 분노한 얼굴로 ‘진명의숙’운동장에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최정옥을 죽여라! 그리고 그 계집애를 배후에서 조종한 최상균형제도 때려죽여라!’
운집한 군중들은 눈물을 흐리며 함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들은 목이 쉴 때까지 ‘죽여라’는 구호를 외치다 천외동 최씨집으로 쳐들어가 덮치자면서 운동장밖으로 뛰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지급 노인들과 이만성 이하 2명의 ‘진명의숙’강사들의 만류로 일부 군중들은 일단 해산했다.
“저희들은 죽어도 그냥 해산하지 않을 겁니다. 저희들의 사랑하는 두 친구를 죽인 살인마 최정옥을 우리 손으로 응징하기 전엔 이 자리에서 물러날 수 없습니다. 살인마 최정옥 뿐만 아니라 배후 조종자이자 주범인 최상균-최상수를 붙잡아 우리들의 손으로 처단하기 전엔 절대로 이 자리를 뜨지 않을 것입니다.”
60여명의 남녀학생들이 저마다 눈을 부릅뜨고 발을 구르며 울부짖었다.
“전적으로 여러분의 뜻에 동의합니다.”
이만성이 비통한 목소리로 성난 학생들을 향해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어둡고 슬픈 얼굴,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괴롭고 울적한 목소리였다. 60여명의 학생들은 숨을 죽였다. 찬물을 끼얹은 듯 운동장안은 숙연하면서도 숨이 막히는 적막강산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우리 모두 냉정하고 침착해야할 순간입니다. 흥분하고 감정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이성을 되찾고 지혜를 짜내야 합니다”
따뜻하면서도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이만성의 목소리는 이어져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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