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선조의 신망을 받았던 신흠은 외교문서의 작성, 시문의 정리, 각종 의례문서의 제작 등에 참여했다. 인조때에는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그는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계곡(谿谷) 장유(張維), 택당(澤堂) 이식(李植)과 더불어 월상계택(月象谿澤)으로 호칭되며 조선 4대 문장가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한문학의 태두로도 불렸다.
한성부 장의동의 사대부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일곱살때 부모를 잃고 외조부인 의정부 좌참찬 송기수의 집에서 자랐다.
외조부의 가르침에 따라 여덟살 때부터 글공부에 전념한 그는 열여섯살에 향시에 급제하고 스무살에 생원시와 진사시, 스물한살에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혼란과 격동의 시기였다.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이 일어났고 계축옥사와 인조반정, 정여립의 난과 이괄의 난 등 크고 작은 정치적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 그는 사건들의 고비마다 정치권의 중심에 있었다.
이로인해 그는 삭탈관직, 방축, 유배 등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의 문장은 육경(六經)에 기초하고 있다. 어려서는 당나라 시대의 문장가 한퇴지를 좋아했고, 장년에는 고문(古文)을 거의 모두 읽었으며, 만년에는 좌씨, 사기, 장자, 예기, 이백, 두보의 시 등을 섭렵하고 애송하면서 대가의 문체를 드러냈다.
그가 남긴 ‘상촌집’ 63권에는 한시 2036수가 전해진다. ‘청구영언’에 수록된 한글시조 30편도 수준높은 문학적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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