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장자연, 31인의 악마는 우리 안에 있다

안은영 / / 기사승인 : 2011-03-09 12: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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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문화평론가
(김헌식 문화평론가)

대기업 로비 팀에 근무했던 한 변호사는 매체를 통해 사법 조직에서 로비 대상이 된 인사가 보인 의외의 반응에 놀랐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대상자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는 것. 왜 이제야 왔느냐는 것. 여기에서 로비란 정기적으로 일정한 돈을 받는 것이다. 뇌물이다. 왜 그 대상자는 이렇게 섭섭하면서도 기쁨에 찬 말을 했을까. 돈을 주는 사람 처지에서 아무에게나 돈을 줄 수는 없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 그럴 가능성과 잠재성이 있는 인사들에게 준다. 그렇다면 뇌물을 주는 대상자가 된 것은 영향력 있는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거꾸로 거대 기업에서 일정한 돈을 주지 않는다면 그는 아직 실력자 내지는 권력자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개 힘을 가진 사람, 영향력 자가 되면, 한국에서는 성공했다고 말한다.

사과상자니 돈봉투니 하는 것들은 하나의 상징이다. 명절에 누군가에게서 선물이 들어오면 대내외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가장은 으쓱해지고 자녀들은 이를 우러보는듯한 느낌이랄까. 물론 이러한 선물 등은 모두 공짜로 일단 주어진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선물을 주는 사람들은 다른 식의 보상을 바라는 것이겠다.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단기적이지는 않지만 장기적인 비용과 보상, 대가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장부는 철저하게 기록되는 법이다.

한국에서는 유독 공짜표가 많은데, 이러한 공짜표도 사회적 인정과 성공이라는 한국인의 문화심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지적이 많다. 좋은 좌석에 공짜로 초대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영향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여겨지고 그것을 외적으로 과시하기도 한다. 작품 자체에 대한 관심이나 흥미보다는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 공짜표를 수용하고 관객석에 앉는다. 이러한 행태의 옆으로최고의 문화예술관람은 공짜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돈도 많고 지위도 높은 사람들은 공짜표를 받는 계층으로 인식되었고, 그 하위의 계층들도 이러한 행위들을 흉내 내기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V)VIP마케팅이라는 차원에서 하나의 경영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이러한 무료와 공짜의 문화소비행태는 정작 예술인이나 창작자들을 매우 힘들게 만들었고,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의 토대를 매우 취약하게 만든 핵심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사회적 성공과 지위를 나타내는 또 하나의 상징은 바로 ‘접대’이다. 이는 남성적 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문제이기는 하다. 룸이나 기생집과 같은 공간적 개념도 있지만 그 자리에 누가 나오는가가 중요해진다. 텔레비전이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이 나오는 자리에 나간다면 그것은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인정받은 셈이 된다.

일반인들이야 항상 우려하고 불안해하는 성매매방지특별법과 같은 처벌과 규제와는 별개로 안전하게 대접받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성공의 징표이다. 연예인 지망생 혹은 연예인의 접대용 대동(帶同)은 우월한 특권적 서비스를 받는 셈이 되기 때문에 하나의 '인정의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인정의식'은 누군가의 모욕과 파괴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권력의 몽환과 환상은 둔감하게 한다. 그 둔감 속에서 일어난 희생자가 바로 고 장자연씨다.

한국식 사회권력추구의 성공지향 문화는 이러한 접대문화와 로비, 뇌물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이는 개인의 인성적인 악성(惡性)이라거나 경제적인 곤란, 시스템의 부재와는 다른 집단주의적 상징 효과의 문화 심리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악한 개인들이 따로 있어서 일어난 현상만은 아닌 것이다. 연예인 접대를 받는 남편을 한편으로는 증오하면서도 한편으로 아내들은 우쭐해질지 모른다.

그것은 자기가 선택한 배우자가 권력자, 성공한 자라는 것을 사회적 인정의식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슬비에 젖어드는 것과 같은 문화는 이 때문에 무섭다. 고 장자연씨를 둘러싼 악마들은 어쩌면 우리 안에 있다. 사회 경제적 권력 지위에 대한 출세 지향적 문화가 심화될수록 언제든지 그 악마들은 우리를 그렇게 만들고 사회에 뛰쳐나오게 할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그러한 악마들이 형성되고 활개치도록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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