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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세계적인 기업 <소프트뱅크>는 재일교포 손정의(孫正義)씨가 설립한 회사로 갖가지 신화를 말들어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첨단기업이다.
천문학적인 운영경비가 필요하다는 일본의 프로야구팀인 <소프트뱅크>도 이 기업을 모체로 한다.
불과 30여 년 전인 1981년, 손정의씨는 회사(소프트뱅크)를 설립하면서 단 두 사람의 직원을 세워놓고 귤상자 위에 올라가 자신의 미래 비젼을 확실하게 피력한 것은 지금도 창업 정신의 화두가 되곤 한다.
“이제부터는 정보혁명이다. 컴퓨터를 사용하여, 컴퓨터의 능력으로 마이크로컴퓨터의 디지털화, 디지털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정보혁명을 제공하기위해 사업을 일으켰다. 우리 회사는 정보혁명의 핵심인 소프트웨어를 판매할 것이다.”
단 두 사람의 사원을 앞에 두고 밝힌 사주의 포부로는 허황한 것 같은 이야기가 마침내 성사되어 지금은 전 세계에 800여 개의 인터넷회사를 소유한 그야말로 전설적인 회사가 되었다.
그 주인공인 손정의씨가 처음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많은 기자들이 당신의 멘토(존경하고 따르는)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뜻밖에도 그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라고 대합하였다.
사카모토 료마는 29세의 청년으로 명치유신을 설계하고 성공하게 한 신화적인 인물이지만, 불행하게도 명치유신을 보지 못한 31세 때 암살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다.
그 사카모토 료마의 불꽃과 같은 의지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소설 「용마가 간다」가 스터디 셀러가 되면서다.
다른 말로 설명하면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서야 ‘사카모토 료마’는 국가정체성의 확립을 위해 온 몸을 던진 젊음의 표상으로 회자 되었다는 뜻이다.
이를 우리와 비교하여 설명하면 일본은 스스로 <근대화>과정을 겪은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근대화>과정을 경험하지 못하였기에 국가 발전의 동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더 구체적으로는 일본은 젊은 선각의 지식인들이 나서서 나라의 낡은 틀을 목숨을 걸고 타파하면서 <명치유신>이라는 근대화 과정에 성공함으로써 스스로 서양문물을 받아 드리게 되었고, 그 여세를 몰아서 낙후되었던 문물을 개혁하는 데 매진함으로써 세계의 문명국과 어깨를 나란이 하는 이른바 세계화과정에 성공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대한제국의 양반들은 기득권을 포기하는 게 아쉽고 싫어서 죽기로 기를 쓰면서 근대화(개항)를 반대하고, 방해 하다가 결국은 후진성을 자초하면서 그토록 아끼던 기득권까지 모두 잃고 말았던 비극은 지금의 반면교사가 되고도 남는다.
일본의 경우 <명치유신>에 성공한 여세를 몰아 젊은이들을 영국이나 프랑스에 유학하게 하여 세계의 신문물을 몸에 익히게 하였는데, 그 대부분이 군사학에 연관된 것이었다.
유능한 젊은 장교들이 있어야 강성한 군대를 만들 수가 있다. 주로 프랑스나 영국 혹은 러시아 군에서 훈련을 받고 돌아온 젊은이들이 일본군의 엘리트 장교가 되어 선진국에서 배워 온대로 강성한 일본군을 만들어 갔다.
일전쟁이나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일선의 소대장, 중대장들이 모두 프랑스나 영국에서 훈련과 교육을 받은 젊은 엘리트 장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안다. 그들은 만주나 중국의 전선으로 출진할 때 모두가 조선 땅을 거쳐서 갔다. 그들 젊은 장교들의 눈에 비쳐진 조선의 낙후된 문화와 빈곤이 조선을 침략할 때의 작전 방향으로 새겨졌기에 일본제국이 조선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을 때는 총 한 발 쏘질 않고 성공하지를 않았는가. 불과 120년 전의 일이라면 소름끼쳐지는 패망이 아닐 수 없다.
나라의 정신적 근대화가 있었던 경우와 없었던 경우가 이같이 명확한 데도 아직도 우리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근대화 정신을 일깨우는 교육을 할 줄 모른다.
어디서 뭘 보고 배우고 온지는 몰라도 수많은 박사들이 대학 강단에 서 있고, 공직에 있지만 지엽말단에 일에만 매달려 있을 뿐이다.
근대화가 생략된 나라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뼈아프게 체험 하였음에도 지금 이 나라에는 정당은 있어도 국가는 없다.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정당의 이해에는 목숨을 걸 줄은 아는데, 국가의 미래에 이바지 하겠다는 각오는 눈 닦고 찾아도 없다.
아무리 급해도 국가의 근대화 과정은 생략될 수가 없다.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동력을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전체 교육과정의 컬리큘럼을 다시 짜는 한이 있어도 <근대와 과정>을 체험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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