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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문 변호사 |
그렇다면 나의 경우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은 무엇일까?
의뢰인에게 친절하기, 재판에서 승소하기, 블로그 칼럼 쓰기, 자서전 2집 출간하기, 정보화지수 올리기, 독서하기, 골프 싱글 유지하기, 헬스장 계속 이용하기, 멋진 로맨스를 꿈꾸기(?), 친구들과 즐겁게 운동하기, 가족들과 유쾌하게 주말을 보내기, 가족들과 해외 여행하기 등 생각해보면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더 많은 버킷리스트를 작성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건강을 유지하는 일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나온 인생을 회고해보고 남은 날들을 계수해가며 살아간다는 것은 아주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 모든 욕망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더욱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인생을 더 사랑하고, 더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지는 것 같다. 나이 들면 외모도 비슷해지고, 주름살은 더 늘어간다. 외모의 아름다움은 한때 일 것이다. 무엇이 노년을 아름답게 할까?
그가 소유한 부일까? 그가 과거에 소유했던 명예일까? 그가 가졌던 육체의 아름다움일까? 아니면 꾸준한 자기관리일까? 자신만이 가지는 여유로움일까? 그리고 자신만이 즐기는 현실의 즐거움일까?
청년의 시절 자신의 미래를 위하여 투자를 했었다면 이제는 자신의 과거를 추억하며 정리하는 일들이 아닐까 싶다. 버켓리스트를 작성한다 해서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하나씩 내려놓고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소설가 박경리씨의 고백은 그래서 우리들을 신선하게 만든다. "나는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이 가고 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는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편안하다고 심경을 고백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지막 남겨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박경리의 고백대로 나의 육체일 것이다. 나의 육체를 세상에 두고 가야한다. 내가 남겨야 할 마지막 유산인 것이다. 소설가 박완서씨의 지적대로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다시 태어나고 싶지도 않다. 난 살아오면서 볼꼴, 못 볼꼴 충분히 봤다. 한 번 본 거 두 번 보고 싶지 않다. 한 겹, 두 겹, 어떤 책임을 벗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소설도 써지면 쓰겠지만, 안 써져도 그만이다."
필자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온갖 볼것, 못 볼것 등을 보며 살아왔다. 목회자들의 비행, 횡령, 거짓설교, 크리스천들의 추악한 행동들, 형제들의 재산싸움, 정치인들의 배신과 거짓약속들을 보았다. 권력과 명예를 위해서는 희생과 양보 없는 그들의 삶을 여과 없이 보았다는 것이 지금의 술회이다.
그래도 지금의 인권위원회를 바라보면서 인권위원회 초안을 동기생인 조용환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만들고, 이를 위해 청와대를 들어가 대통령 앞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민들의 신문고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대통령을 설득했던 열정들이 나를 즐겁게 한다. 내 손으로 법 제정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할 일을 다 했다는 고백이다.
문득 나옹선사의 싯귀가 불현 듯 생각난다. “如水如風而終我(여수여풍이종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얼마 남지 않는 인생을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야한다는 생각이다. 물과 같이, 바람과 같이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살다가 가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파란 하늘이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고 교훈하는 것처럼 나에게 주어진 생명의 기간 동안 사랑하고, 열정을 태우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육체를 세상에 남겨놓고 가야 하는 것이 박완서의 지적처럼 헐렁한 바지를 마음대로 입을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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