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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
관심 사병이 지키는 최전방 초소명장 보 구엔 지압이 지휘하는 베트남 북군 병사의 팔뚝에는 ‘북에서 태어나 남에서 죽는다’는 문신이 새져져 있었다. 그런 결기로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통일을 이뤄냈다. 핵무장 세력과 마주한 우리 군에게도 ‘남에서 태어나 북에서 죽는다’는 결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선뜻 긍정하기 어렵다.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을 게다. 선임병들의 거듭된 폭행으로 숨진 윤 일병의 가족에게 닥친 불행 말이다. 하루 90여 대의 상습적 구타, 개처럼 바닥을 기며 선임병이 뱉은 가래침 핥기, 밤새껏 기마자세로 엉거주춤 서있기, 누운 채 물고문 당하기…. 지옥이 따로 없다. 윤 일병에게 가장 무서운 적군은 휴전선 너머의 북한군이 아니었다. 내무반 안의 고참병이었다.
스물한 살의 앳된 청년이 겪었을 치욕과 고통을 떠올리면 치가 떨려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다. 군 검찰은 가해자들을 상해치사죄로 구속기소했다.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과연 그럴까. 가해자들은 윤 일병이 실신하면 수액 주사를 놓고 다시 때렸다. 25분간 64번의 구타를 가한 적도 있다.
5분에 한 번꼴로 ‘제발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저들은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온몸에 피멍이 들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비장이 파열됐다. 수십일 동안 그렇게 지속적으로 맞고도 살아남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고의는 사실적·주관적 개념이 아니다. 규범적·객관적 개념이다. 고의의 유무는 가해자의 심리상태가 아니라 일반인의 건전한 분별력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더구나 가해자들은 기초 의료지식을 갖춘 의무병이다. 불행한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사후에 심폐소생술을 했다는 것만으로는 폭행 당시의 미필적 살인의 고의를 부정하지 못한다. 법원은 하급자를 자살로 몰고 간 가혹행위자에게도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하고 있다. 이래서야 어떻게 가혹행위를 근절할 수 있겠는가. 합법적 국가조직 안에서 잔학한 불법행위가 판을 칠 수 있는 이유는 처벌법규가 없어서가 아니다. 가혹행위를 근절하려는 확고한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릇된 인성(人性)에 있을 터이다. 인간 심리의 내면에 독버섯처럼 똬리를 튼 악성(惡性)이 군대 내의 합법적 위계질서를 토양으로 사악한 가혹행위의 싹을 틔워낸다. 사람은 힘을 지닐 때 오만해진다. 그 힘이 합법성을 부여받으면 권력이 되고, 권력이 악한 본성과 만나면 잔혹한 사디즘으로 탈바꿈한다. 정치권력만이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합법적 권력은 반사회적 폭력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평범한 대학생도 고참병이 되면 냉혹한 악마로 돌변한다.
인간의 양면성이다. 제 자식을 학대하는 친권의 권력, 제자를 성추행하는 교단의 권력, 신도의 영육(靈肉)을 노략질하는 종교의 권력…, 인성의 두 갈래 흐름이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린다. 인성의 바탕은 가정교육에서 이뤄진다. 부모의 책임이 클 수밖에 없다. 성년에 이른 자식의 행동에는 부모가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민사법의 법리이지만, 인성교육은 법리 이전의 문제다.
연좌제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됨의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이 그 뒤를 따라야 하지만, 교권이 무너진 학교와 퇴폐로 치닫는 사회에 올바른 인성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신계를 이끌어야 할 종교마저도 물신과 탐욕의 우상 앞에 무릎 꿇은 듯한 세태이니 오죽하겠는가.
시위에 나선 어른들이 경찰관을 집단 폭행하고 국회의원들이 뒤엉켜 난투극을 벌이는 나라에서 젊은이에게만 인성의 순화(醇化)를 바랄 수는 없다. 애매모호한 병명으로 군복무를 면제받은 사람이 격무(激務)가 기다리는 고위 공직에 거뜬히 오른다. 한때는 국가안보회의 참석자의 절반 이상이 병역 미필자였다.
국방의무와 국민 개병제(皆兵制)의 정당성은 숱하게 상처를 입었다. 그렇다고 한숨만 내쉬며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우선 비뚤어진 병무행정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벼슬 높은 이의 자식들이 보이지 않는 최전방 초소에 힘없고 소외된 ‘관심 사병’이 배치되는 부조리한 현실, 특권층의 멀쩡한 자식에게 돌아가는 병역 특례 혜택, 식스팩을 자랑하는 건장한 연예인들이 현역복무 대신 공익근무로 분류되는 아리송한 등급 심사…, 민초(民草)의 가슴엔 피멍이 든다.
작년 한 해만도 2만6천여 명의 심리이상자가 현역병으로 입대했다. 입대 당시부터 심리이상자나 관심 사병으로 분류될 정도라면 그야말로 병역 면제 대상이 아니겠는가.
북한보다 크게 앞선 경제력에 안도하는가. 문화가 융성했던 경제 강국 아테네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 참패했다. 군복무 기간이 우리는 2년, 북한은 10년 내외다. 북한 정예군과 대치하고 있는 안보상황에서 윤 일병 사건은 단순한 군기 문제가 아니다. 국가 존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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