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한국정치(3)

공희준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16-11-23 17:4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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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희준 정치컨설턴트
▲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마리화나도 피우지 않고, 동성애도 하지 않으며,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와 같은 고담준론을 일삼는 신문들도 읽지 않는 평균적 미국 서민들의 입장으로 한번 역지사지해보자. 이들이 생각하기에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을 위해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칠 것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반면에 힐러리 클린턴은 월가의 극소수 금융업자들을 위해 미국을 상대로 사기를 칠 것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정치는 일반 대중의 관점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사회과학은 나의 관점에서 세상을 해석하는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정치인답게 행동했다. 그는 대중의 관점에 서서 미국 사회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지를 줄기차게 이야기해나갔다. 힐러리 클린턴은 갓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회과학 전공자인 양 말했다. 그는 클린턴 본인의 관점에서 경쟁자인 트럼프가 얼마나 사악하고 불결한 인간인지를 고집스럽게 폭로했다. 트럼프의 선거운동 주제는 미국이었고, 힐러리 대선 캠페인의 고갱이는 트럼프였다. 아마 도널드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이 그녀의 남편인 빌 클린턴을 제외한다면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입에 올린 남자 이름이리라. 2016년의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힐러리는 트럼프에게 접수된 공화당에 이은 두 번째 행방불명자였던 셈이다.



한국의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양산해내는 반 트럼프-친 클린턴 논조의 기사들을 정말 부지런히 맹목적으로 받아쓰다가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그럼에도 사대주의적인 외신 받아쓰기에만 길들여진 대한민국 지식인 계급의 지독한 식민지 노예 근성은 좀처럼 시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신고립주의”를 우려한다는 식의 시각과 전망이 그 증거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최강팀을 가리는 경기를 한국 시리즈라고 이른다. 일본 프로야구의 챔피언 결정전을 재팬 시리즈라고 부른다. 그런데 미국 프로야구의 지존을 뽑는 시합의 명칭은 아메리카 시리즈도, USA 시리즈도 아니다. 잘 알다시피 ‘월드 시리즈’이다. 즉 미국인들에게 미국은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세계 그 자체다. 전통적 고립주의든, 트럼프기 밀어붙일 것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신고립주의든 그것은 전문적인 직업 외교관들과 편안한 대학 캠퍼스에서 평생 벗어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소심하고 속물적인 먹물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현학적 수사일 따름이다. 평범한 미국인들, 특히 미국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땀 흘려 일하는 성실한 백인들은 자국의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국가정책을 고립주의라고 여기지 않는다. 미국 중심주의라고 높게 평가한다. 내가 트럼프의 정책기조와 통치철학을 한국의 식자층이 엄청나게 오독하고 있으며, 그 결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나 종군위안부 합의에 못잖은 초대형 외교참사가 또다시 벌어질 것이라고 예견하는 이유다. 미국이 채택하지도 않은 고립주의를 근거로 한국 정부가 대미외교를 펼칠 것이 분명한데 사고가 나지 않으려야 안 날 수가 없는 것이다.



좋은 정치는 자기 나라 국민들을 고려대상 1순위로 자리매김하는 정치다. 자기 나라 국민들을 고려대상 1순위로 설정한 정치는 나쁜 정치라고, 낡은 정치라고 믿는 사람들은 현실 정치에 관심을 끄고 해외로 자원봉사를 떠나거나, 아니면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해 국제연합 곧 UN 사무국에서 일자리를 얻으면 된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트럼프가 소의 자식인지, 말의 자식인지, 사람의 자식인지 그 정체가 아리송할지언정, 미국인들한테만은 트럼프가 착하고 양심적인 정치인은 아니어도 최소한 유능하고 감각 있는 정치인으로는 보이는 까닭이다.



비스마르크에 버금갈 명재상으로 명성을 날려 온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최근 고전하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메르켈은 베를린의 공장 노동자들의 급여수준이나 프랑크푸르트의 출판사 직원들의 노동조건보다는 시리아 난민들의 안전과 복지를 더욱 중시하는 것으로 보통의 독일 국민들의 뇌리에 인식되기 때문이다. 물론 독일인이 아닌 우리는 메르켈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우리가 당사자인 독일인이었어도 과연 빛나는 보편적 휴머니즘을 통 크게 마냥 발휘할 수가 있었을까? 대답은 각자 속으로만 하시기 바란다. 독자들에게 굳이 공개적으로 소리 내 답변해 달라고 강요하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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