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혁 의사 부산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101주년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09-14 15: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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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방보훈청 선양홍보팀 이순희

101년 전 1920년 9월 14일 민족의 피로 얼룩진 부산경찰서를 파괴한 독립운동가가 있다.

 

바로 박재혁 의사이다. 박재혁 의사는 1895년 5월 17일 부산 동구 범일동에서 태어나 부산진보통학교(현 부산진초등학교)와 부산상업학교(현 개성고등학교)를 다니며 학창 시절부터 반일운동 단체를 조직하는 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최천택·오택 등과 함께 일제에 의해 금지된 대한제국 보통학교의 국사 교과서인 ‘동국역사’를 비밀리에 등사하여 배포하다가 감금당하기도 했다.

또한 부산진 출신 죽마고우들과 함께 평상시에는 항일투사의 국내 연락처 역할을 하고, 유사시에는 비밀결사대로 활동하기 위해 구세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1915년 학교를 졸업한 박 의사는 경북 왜관에서 무역상으로 근무하면서 자금을 모아 상하이로 건너갔고 국외에서 항일투쟁의 뜻을 같이한 여러 독립운동가와 교류하면서 의열투쟁 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했다.

1920년대 전반의 의열단은 강도 높은 암살과 파괴 방식으로 의열투쟁을 벌인 대표적인 독립운동 단체였다.

 

창단 직후 국내 주요 일제 기관들을 폭파하고자 거사를 추진하였으나 일제에 의해 발각되고 말았고 의열단 탄압에 앞장선 부산경찰서를 폭파하기 위한 박재혁 의사의 거사가 추진된 것이다.

1920년 4월 부산에 돌아온 선생은 당시 부산경찰서장인 하시모토가 고서에 관심이 많다는 점을 이용해 고서에 폭탄을 숨긴 뒤 중국 고서 상으로 위장하고 잠입하여 숨겨 놓았던 폭탄을 투척했다.

 

하시모토는 병원에 이송되는 도중에 절명하였고 박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체포된 직후 박 의사는 1921년 3월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혹독한 고문과 폭탄의 상처로 고통을 겪었다.

 

“왜놈의 손에서 욕보지 말고 차라리 내 손으로 죽겠다”라고 결심한 뒤 단식을 한 선생은 1921년 5월11일 순국했다. 그때 박 의사의 나이 27세였다.

부산진구 어린이대공원 수변공원에는 독립운동을 위해 생명을 아낌없이 바친 투철한 사명감을 표현하기 위해 태극기를 가슴에 안고 전진하는 모습의 박재혁 의사 동상이 있다.

 

이는 굳은 의지와 애국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또 석상 군상은 온 국민의 함성과 태극기의 물결로 사랑과 밑음 협동 정신을, 삼각형의 구도와 삼단계의 좌대는 3·1독립운동을 상징화하고 있다.

박재혁 의사는 3·1운동 이후 실천과 행동으로 보여 준 의열단 최초 의거로 부산경찰서 폭파사건을 일으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부산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101주년이 되는 9월14일에는 일제 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해 민족 의지를 만천하에 과시하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투쟁한 박재혁 의사의 드높은 항일 정신을 온 국민이 함께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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