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승리의 숨은 동반자, 탐정과 변호사"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5-08-10 12:31:55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최순호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 주임교수



"증거가 부족해서 이길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영업비밀을 빼앗긴 한 중소기업 대표가 변호사한테서 들은 말이다. 수십억의 핵심 기술을 경쟁사가 훔쳐간 정황은 명백했지만,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해 소송에서 졌다. 사건 발생 후 몇 달이 지나 변호사를 찾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처음부터 전문가가 현장을 조사했다면..." 그는 지금도 후회한다.

이런 일이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자주 일어날까. 아무리 실력 있는 변호사도 증거 없이는 속수무책이다. 미슐랭 셰프도 신선한 재료 없이는 최고의 요리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법정에서 승부를 가르는 것은 결국 '증거'다. 그 증거를 찾아내는 전문가가 바로 탐정이다. 탐정이 현장에서 사실을 발굴하면, 변호사가 그것을 법의 언어로 완성한다. 한쪽은 재료를 준비하고, 다른 한쪽은 요리를 완성하는 것이다. 탐정과 변호사, 이 두 전문가가 만날 때 비로소 진정한 '법정의 승부'가 가능해진다.

외국에서는 이미 변호사와 탐정이 한 팀을 이뤄 활동한다. 미국 드라마에서나 보던 모습이 실제 현실이다. 변호사는 법리를 따지고, 탐정은 현장을 누빈다. 뉴욕의 한 대형 로펌에서는 "탐정 없는 소송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다. 실제로 2019년 보험사기 사건에서 탐정이 찍은 동영상 한 편이 수억 원을 구해냈다. 장애인 행세를 하며 보험금을 타낸 사기꾼이 골프를 치는 모습을 확보한 것이다. 변호사는 법리 전략을 세우고, 탐정은 증인 발굴, 현장 조사, 사실관계 재구성 등 '사실의 토대'를 만든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민간보안산업법'에 따라 보안산업위원회(SIA)가 탐정 면허를 관리하며, 변호사의 의뢰를 받아 목격자를 찾거나 재판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일상이다. 2020년 산업재해 소송에서는 탐정의 현장 재구성 조사가 기업의 무죄를 입증하는 핵심 증거가 되기도 했다. 프랑스는 2015년 국내치안법으로 탐정업무를 구체화했다. 사내 범죄 조사부터 신용조사, 개인의 이혼 관련 정보수집까지 허가제로 관리한다.

일본도 더 나아가 2006년 '탐정업법'을 제정했다. 탐문, 미행, 잠복 등 합법적 조사방법을 법에 명시하고, 도·도·부·현 공안위원회가 관리·감독을 맡아 제도적 신뢰성을 높였다. 조사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적시함으로써 직역 간 충돌을 줄이고 변호사와 협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보장하였다.

반면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 1999년부터 탐정을 합법화하자는 얘기가 나온 지 벌써 25년이 넘었다. 그동안 국회에는 무려 13차례나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되는 일을 반복했다. 결국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그 사이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2024년 기준 사이버범죄는 20만 건이 넘게 급증했고, 기업들은 최근 5년간 39만 건의 기술 탈취 분쟁에 시달리고 있다. 개인의 권리의식도 높아져 민사분쟁이 연간 450만 건을 넘어섰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증거를 찾으려면 혼자서 알아서 해야 한다.

경찰서에 가면 "민사 불개입"이라며 손사래를 치고, 검찰은 "증거가 있어야 기소할 수 있다"고 한다. 가정폭력을 당한 아내가 남편의 폭행 증거를 혼자 모아야 하고,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직장인이 은밀한 가해 행위를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기업의 내부 부정이나 산업스파이 사건은 현행 수사기관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일쑤다. 변호사들도 "손발이 묶인 채 싸우는 느낌"이라고 토로한다.

그러면서 탐정제도를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변호사단체는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 "변호사 업무영역을 침범한다", "경찰 출신들의 전관예우 특혜 자리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런 우려들은 제도를 올바르게 설계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교통사고가 무섭다고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 말자는 이야기와 별반 차이가 없다.

사생활 침해가 걱정된다면 개인정보 보호와 조사 권한의 경계를 법적으로 탄탄하게 제정하면 된다. 변호사 업무 침범의 걱정도 기우다. 탐정은 '사실확인'을 하고, '법 해석'이나 '재판진행'은 여전히 변호사 고유 영역이다. 수사기관 출신 특혜 논란도 자격요건과 결격사유를 명확히 규정하면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 오히려 제도권 안에서 탐정의 업무범위와 조사방법을 명확히 하고, 체계적인 관리·감독을 하면 부작용은 줄어든다.

필자는 지난 8월 5일 국회 공청회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공인탐정업 법안을 제안하였다. 핵심은 탐정이 변호사의 의뢰를 받아 사실조사를 수행하고, 변호사는 이를 법적 절차에서 활용하는 협업 구조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직역 간 불필요한 충돌을 예방하고, 상호 보완적 역할 분담이 가능해진다.

또한 제안된 법안은 관리 체계 측면에서도 현실성과 실행력을 함께 고려하였다. 일본의 도·도·부·현 공안위원회 모델을 참고하여, 우리나라에서도 행정부 산하 시·도 자치경찰위원회가 등록·감독 업무를 수행하는 ‘현장 밀착형 관리체계’를 구상하였다. 이는 중앙집중식 통제 방식보다 지역 상황에 보다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높다.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응답할 차례다. 관련 직역 간 협의체를 구성하여 공정한 논의를 시작하고, 국민의 이해와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체계적인 홍보도 병행해야 한다. 탐정제도는 단순한 직업군의 도입이 아니라, 권리구제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정의 실현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재명 후보는 ‘탐정업법 도입과 합법적 사실조사 서비스 제공’을 65번째 ‘소확행 공약’으로 발표하며, 제도화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바 있다.

더욱이 현대 사회의 분쟁 양상은 갈수록 복잡다양해지고 있다. AI와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개인정보 침해, 디지털 성범죄, 온라인 사기 등 새로운 유형의 범죄가 급증하고 있으며, 기존의 공권력만으로는 이러한 다양한 민간 영역의 분쟁을 세밀하게 다루기에 한계가 있다. 특히 피해자가 원하는 맞춤형 조사는 현행 체계 내에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처럼 제도적 공백이 존재하는 틈새에서 탐정이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면, 피해자 보호와 권리구제의 폭은 크게 확대될 수 있다.

탐정과 변호사는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전문성이 맞물려야 진정한 정의가 완성된다. 한쪽은 현장에서 객관적인 사실을 발굴하고, 다른 한쪽은 그 사실에 법적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미 해외의 검증된 모델들이 우리가 나아갈 길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정의로운 판결은 결코 우연히 나오지 않는다. 정확한 사실 위에 탄탄한 법리가 세워질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탐정이 현장에서 찾아온 '최상의 식재료' 위에 변호사가 '완벽한 조리법'을 얹는 그 순간, 법정은 진실과 정의가 만나는 성스러운 공간이 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이제부터 정부와 국회는 구체적 로드맵 제시에 나서야 할 것이다.

<최순호>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 주임교수 ▲경찰학박사, 경영학박사 ▲前총경, 前대통령실 행정관 ▲K-탐정단장, K-탐정연구소장 ▲공인탐정법 등 민간조사업 관련 논문·저서 다수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