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흔들고 공감 안 되는 병역 특례, 시대적 눈높이에 맞춰 원점 재검토해야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6-10-07 14: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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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2026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은 한국 스포츠의 쾌거와 함께 우리 사회에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4회 연속 금메달을 차지하는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으나, 우승 직후 일부 선수들이 보여준 경솔한 언행이 여론의 거센 질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주장 이 아무개 선수의 “군대 안 갑니다.”라는 외침이나 양 아무개 선수의 “군 면제라는 보상이 있으니 그거 하나만 보고 경기를 했다.”라는 인터뷰 발언, 그리고 박 아무개 선수의 ‘전역모’ 소셜미디어 인증 사진은 국민께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무엇보다도 국가대표 선수로서 태극마크의 무게와 책임감 그리고 자긍심도 크지만, 그보다는 병역 혜택이라는 개인적 보상에만 매몰된 듯한 성숙하지 못한 작태는 이 시간에도 영토 수호를 위해 전방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현역 장병들과 청년들에게 깊은 박탈감과 모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병역이 존중과 감사의 대상이 아닌 기피하고 조롱할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씁쓸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현행 예술·체육 특기자에 대한 병역특례제도는 1973년 국위선양과 문화 창달을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체육 분야의 경우 올림픽 동메달 이상, 아시안게임 금메달 입상자에게 체육요원 편입 자격을 주어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과 544시간의 봉사활동만을 이수하면 사실상 병역 면제 혜택을 주고 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과연 이 제도의 명분이 여전히 유효한지 냉정하게 짚어보아야 한다. 1970년대에는 국제대회 입상 자체가 드물어 국가 위상을 드높이는 수단이 되었으나,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른 현재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특히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며 K-문화를 상징하는 방탄소년단(BTS)과 같은 대중문화 예술인들이 정상적으로 군 복무를 이행하는 현실과 비교하면, 특정 스포츠 대회 메달만으로 특혜를 누리는 것은 2030세대의 공정성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현재 징병제를 시행하는 국가 중 이런 수준의 혜택을 제공하는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대만, 이란 정도에 불과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회의 성격과 종목에 따른 공정성의 결여다. 올림픽과 달리 아시안게임은 종목별 경쟁 수준의 편차가 몹시 크다. 이번 축구 결승전에서 한국은 U-23 대표팀이 출전한 데 반해 일본은 U-21 선수들로 팀을 구성했고, 야구 대표팀 역시 프로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한국과 달리 일본은 사회인 아마추어 선수들이 중심이었다. 이처럼 상대국의 선수 구성과 경쟁 수준을 무시한 채 금메달이라는 획일적 결과 하나만으로 엄청난 병역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시안게임이 일부 종목에서 합법적인 병역 브로커 창구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과거 병역 혜택을 받았던 선배 선수들의 성숙한 태도와 비교하면 이번 사태의 안타까움은 더 커진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손흥민 선수는 “병역 혜택보다 우승하러 왔다.”라며, “태극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금메달은 국민의 것”이라고 공을 돌렸다. 이강인 선수 역시 항저우 아시안게임 우승 직후 병역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 남자라면 마땅히 거쳐야 할 과정”이라며 신중하고 성숙한 태도를 보였다. 국가대표 자격은 메달의 무게와 그 가치를 깊이 이해하는 선수에게 어울린다는 점을 명심해야만 한다.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절벽(Demographic Cliff)’ 현상은 제도의 전면 재검토를 압박하는 또 다른 핵심 요인이다. 병역 특례는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기준을 고쳐왔지만 형평성 논란은 계속됐다. 월드컵 16강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에 주던 특례도 결국 폐지됐다. 특정 대회 성적을 병역 혜택과 직결하는 방식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여기에 병역 자원 급감은 제도를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이유가 아닐 수 없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20세 남성 인구는 2025년 23만 9,000명에서 2045년 11만 9,000명으로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특히 한국군의 병력은 6년 새 이미 11만 3,000명이나 줄어들고 있다. 병력 자원이 급감하여 일각에서는 전역자의 재입대까지 거론되는 심각한 안보 리스크(Risk) 상황에서, 예외를 인정하는 기준은 과거보다 훨씬 엄격해야 마땅하다. 국회 여야 의원들이 일제히 “병역 자원이 소중한 시대에 병역특례제도를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해야 한다.”라고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이에 더해 예술·체육요원들이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봉사활동 관리 실태는 제도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병무청 조사 결과 대상자 84명 중 절반이 넘는 47명의 봉사활동 실적에 문제가 있었으며, 일부는 기록을 24시간 이상 허위로 꾸며 수사 의뢰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엄청난 특혜는 누리면서 그에 상응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의무조차 기만하는 행태는 제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린다.

국가의 흥망은 병역에 대한 인식과 깊이 맞닿아 있다. 고대 스파르타(Sparta)가 도망병을 사면하며 국방의 규범이 무너진 후 부활하지 못했고, 조선이 인조 때 군포 징수 등으로 병역 의무를 힘없는 백성에게만 집중시키며 대혼란을 겪은 역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병역특례제도가 청년기 운동선수들의 경력 단절을 막고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도전을 뒷받침해 온 긍정적 기여를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특정인의 경력 유지를 위해 「대한민국헌법」상 기본 의무를 경감시켜 주는 것은 공동체의 최우선 가치인 공정(公正)을 훼손하는 일이다. 공정의 가치는 그 어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의 금메달보다도 크고 무겁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몇몇 철부지 선수들의 일탈로 치부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제는 50여 년 전 만들어진 낡은 잣대를 버리고, 누적 점수제 도입, 아시안게임 혜택 제외, 복무 기간 단축 등 시대 변화와 국민 눈높이에 맞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제도로 원점에서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금메달의 성취는 그 자체로 눈부시게 빛나고 존중받아야 하지만, 국방의 의무는 특정한 목적을 위한 보상이나 기피의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신성하고 영예로운 책무로 굳건히 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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