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우의 인물채집] 교실을 지키는 사람 김진호의 꿈 !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4-12-25 15: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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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사람 김진호. 그는 때때로 악몽을 꾼다고 말했다.


몸이 여러사람의 손에 의해 들려 나가는 와중에 두손으로 문틀을 움켜잡고 버티다가 비명같은 울음을 토하고 있는 자신을 만나는,

그는 춘천의 교동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동산면에서 화전민으로 살았다. 어느해 홍수피해로 인해 화전을 막살하고 어머님의 행상으로 연명하며 자랐다.


그는 아이 때 기억도 없는 소아마비를 앓았다. 결국 한 쪽 다리가 조금 짧은 사람으로 불편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불편은 곧 불공평한 관계를 만들었다.


가난한 홀어머니와 살아온 그가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 하면서 불공평은 공포로 확대되기 시작 했다.

한쪽 다리가 짧은 만큼 쩔룩 거리는 그의 걸음은 '쩔룩발이 실룩발이' 라고 놀리는 웃음꺼리가 되었고 그때마다 그는 분노조절장애 증상을 보였다.


분노는 당연한 반사작용 이지만 반복되면 병이된다.


병이되면 증상이 발작하기 마련, 아침부터 교실에서 절룩발이 흉내를 내는 그 애를 패대기 친 후에 선생님께 야단을 맞았다. 그는 점심시간에 지나고 더섯번째 수업이 시작하자 벌떡 일어섰다.

" 점심시간에는 수돗가로 갔어요. 물배 라도 채워야 되니까 ᆢ그때, 뒤통수에대고 ' 야! 물만먹고 사는 놈, 또 수돗가 가냐? 수도물도 작작 쳐먹어라! ' 돌아보니 아침에 놀려서 싸웠던 그 친구 였어요. '절룩발이 실룩발이는 물만먹고 산대요' 하며 놀리고 다니는 것이었다. 낄낄 거리는걸 보는 순간 눈이 뒤집혔지요. 그러나 나는 그 친구를 따라 잡을 수 없었어요.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섯 번째 수업이 시작되어 그친구가 자리에 앉자 쫒아가서 이번엔 정말로 마구 팼어요. 그 장면을 선생님이 보고는 '저놈은 안되겠다 내 쫒아라' 그래서 아이들이 저를 들고 나가는데 피눈물이 나더라구요."

학교에서 쫒겨나면 행상나간 어머니가 얼마나 슬퍼할까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고 말하는 그의 두 눈에는 벌써 눈물이 고였다.

"손톱이 빠질 정도로 교실문틀을 움켜잡고 아우성을 치는데 부반장이 소리쳤어요. '선생님 진호를 놔 주세요. 아침부터 진호를 놀리고 '지금도 물만먹고 사는 놈!' 이라고 놀린 애를 혼내 주세요. 진호는 오늘도 도시락 없어서 수도물 먹으러 갔던 거라구요!' 정말 구원의 소리였지요 "

그 날의 기억을 그는 결코 잊지 않았다.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걸 그는 잊지 읺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고아원 친구가 말없이 내민 옥수수 빵 ᆢ 고아원 아이들에게 지급하던 그 빵을 나누어 먹으며 흘린 눈물ᆢ "눈물젖은 빵"이라는 말 조차 사치스러웠다.고 그는 말했다.

" 그날, 내가 학교 밖에 내동댕이 처 졌다면 세상을 증오하며 살았을 거예요. 그리고 수호천사 처럼 나를 구해준 부반장 여자애를 생각하며 나도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내게 옥수수 빵을 건냈던 고아원 친구는 결국, 조폭짱이되었더라구요. 몰랐었는데 막국수 축제 때, 아는 이가 묻는거예요 . '축제장마다 깡패들이 한자락 깔고 들어 오는데 여기 왜 안오는지 아냐고, 뭔 소린가했더니 그때, 그 친구가 조직원들 한테 ' 내 친구니까 도와주라!' 했다는 거예요. 그때 , 수소문해서 만나게 됐지요. 지금은 옛날얘기 하며 삽니다. 깡패요? 공무원도 은퇴할 나이에 뭔, 다 옛 일 이지요." 라며 웃는다.

"중학교 2학년 때 결심했습니다. 돈을 벌려면 직업훈련원을 가야겠다 생각하고 직업훈련원 시험을 봤어요 어머니가 실망 할까봐 고등학교 시험보러 간다고 했지요. 그때, 철들기 시작 했나봐요 .콩나물국밥 집에서 속 안 좋다고 한개만 시키는 어머니 앞에서 저는 배탈 날 것 같다며 남기는 버릇이 생긴 걸 보면 ᆢ"

군대 같은 직업훈련원을 졸업하고 취업해서 해외 파견 근무를 가려고 준비하다가 체력저하로 쓰러져 포기하고 만18살에 운전면허를 땄다.

 
그 뒤 부터 돈버는 일은 범죄 빼고 다 했다.


웨이터, 고물장사, 포장마차를 전전하다가 드디어 택시운전사가 됐다.


택시 기사 대신 운전하며 일종의 알바비용을 받는 스페어기사를 하다가 사장에게 적발된 그는 고발대신 특별채용되는 기회를 잡았다.

1981년 20살의 나이에 최초의 안정된 직장인 택시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나중엔 붙들고 울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딴 얘기를 하쟀더니 덜컥 결혼 얘기를 꺼냈다.

"정말 헤어지기 싫은 여자를 만났어요. 그래서 같이 살기로 했지요. 처가집에선 난리가 났지요.헤어지라는 말에 아내가 거부하자 화가 난 가족들이 아내를 때리려고 해요. 그래서 내가 가로 막았지요. '이 여자는 내사람이다 .내 아이를 가진 내사람, 손대지 마라 ! ' 이 사건이 제 인생의 분수령 됐어요 ."


갑자기 의기양양해진 그의 모습이 더 눈물난다.

" 그 날 부터 새로운 세상이 열렸지요. 세상에 단 한사람 어머니만 날 믿었는데 두사람이 됐거든요. 날 끝까지 믿어주는 세사람만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거든요. "

나폴레옹이나 징기스칸만 세상을 바꾸는건 아니다.


소아마비, 행상하는 홀어머니, 놀리거나 무시하거나 무관심한 사람들 속에서도 그는 믿음의 씨앗을 뿌리고 스스로 그 뿌리가 되며 세상의 푸른 나무로 자리났다.


이제. 그 탄탄한 가지를 펼쳐 사람을 품고 거친바람도 막아주는 큰 나무가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 중에는 저를 모두 다르게 기억하는 이가 많습니다. 누구는 택시회사 에서의 투쟁으로 사납금을 바꾸고 사고책임 룰을 공정하게 바꾼사람으로, 또 다른이는 결국, 혼자남아 해고된 노동자로, 그야말로 쌀이 떨어지고 연탄불기도 없는 방에 처자식을 두고 용달차를 운전하던 사람으로, 8년 동안 돈 안되는 이장생활했던 막국수집 주인으로, 그리고 언제부턴가 신촌리 대룡산 밑에 별장같은 건물을 지어 막국수를 파는 사람으로, 하지만 저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억울한 이가 세상밖으로 쫒겨나지 않게, 그들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그가 바로 제 자신 이니까요." 또 그 교실이 생각났나 보다. 말끝에 또 눈물바람이다.


중학교때, 오직 돈버는것이 어머니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세상을 가로 질러온 머리 허연 중년남자 김진호의 꿈은 뭘까?

" 억울한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제 억울하지 않습니다. 돈도 열심히 벌었고 뒤늦게 대학도 다녔고 곧 석사학위도 받을 겁니다. 아내는 막국수 집 주방에서 즐겁게 일하고 아들은 대표가 되어서 큰 일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교실 밖으로 쫒겨나는 사람이 없도록 '세상의 교실'을 지키는 일을 합니다. 돈버는 일 이냐구요? 사람을 버는 일 이지요."

 

처음 약속대로 그의 직업은 비밀이다 !

춘천사람 김진호는 "킥보드"라는 브랜드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좋은사람이다.

킥보드를 아시나요 ?

한쪽 다리가 짧은 사람이 있습니다. 소아마비 환자들의 일반적 증상입니다.

절룩거리며 걷는 여동생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오빠가 있었습니다.


오빠는 그 여동생을 위해, 짧은 다리를 올려놓고, 긴 다리로 지면을 박차며 달릴 수 있는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여동생은 그 기구를 타고 나가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그녀의 오빠가 사업에 실패하고 어쩔 수 없이 정든 집을 팔게 됩니다.

그 집을 사기 위해 젊은 부부와 어린 아이가 집을 방문합니다. 이때, 어린 아이가 지하실 구석에 있던 본 적없는 놀이기구를 꺼내 들고 온 동네를 휘젖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열광했습니다.


오빠는 여동생에게 만들어 주었던 그 기구를 동네아이들에게 만들어 주기 시작합니다.

이제 성인 된 소아미비 여동생은 아이들에게 놀이기구 타는 법 시범을 보입니다. 그 기구는 전세계로 퍼져나가 “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기구를 “킥보드”라 불렀습니다.

사랑은 조금 짧은 것을 품어주는 마음 입니다!

마음 속의 교실을 지키는 춘천사람 김진호 !
그는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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