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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한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인데 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 "심하게 얘기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강도 높은 발언이 지난 29일, 역대 처음 생중계된 국무회의에서 터져 나왔다. 올해 들어 다섯 번째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를 향한 질타였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감정적 표출이 아니다. "생계를 위한 직장이 죽음의 현장이 되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며 산업재해 근절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추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업재해 사망률은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는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메울 민간 차원의 전문 감시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산업안전 관리의 구조적 한계는 명확하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은 2024년 기준 전국 2,260여 명 수준으로, 전국 약 300만 개에 달하는 사업장을 담당해야 한다. 근로감독관 1인당 1,700여 개 사업장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업장 1곳당 연 1회 점검도 어려운 실정이며, 따라서 상시 감시는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근로감독이 "적발 중심에서 자율시정 중심으로 전환"되어 사업장의 자율적 개선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장조사 1~2개월 전 사전계도'로 인해 법 준수율 23%에 불과한 영세 건설현장에서는 점검 당일만 안전장비를 착용하는 '보여주기식' 안전관리가 횡행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에도 서류상 체계만 갖춰진 채, 현장에서는 여전히 생산성과 비용절감이 우선시되어 실질적 안전관리 개선은 요원한 상황이다.
산업재해 은폐도 심각한 수준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산재 미보고·은폐 적발이 총 4,000건을 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나 일용직 근로자는 산재 신청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 위험성 평가는 대부분 컨설팅 업체에 의존해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현장의 실질적 위험 요소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강조한 것처럼 "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각종 의무조항을 두고 있지만, 국무위원들조차 위반 시 제재 수준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현실에서, 은밀한 안전수칙 위반과 산재 은폐를 제대로 감시하고 예방할 수 없다. 대통령이 지적한 ‘안전조치 미이행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 체계의 부재’는 결국 감시와 적발 시스템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해외는 다르다. 영국은 독립규제기관인 보건안전청(HSE)과 민간 안전 컨설턴트들이 기업의 안전관리를 상시 모니터링하며, 독일은 기업 내 안전관리자와 별도로 외부 전문기관의 정기 감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은 산업안전보건청(OSHA)의 감독과 더불어 민간 전문가들이 기업 안전을 상시 점검하고, 은폐 가능성을 차단하는 민관 협력 시스템을 운영한다. 일부 주에서는 민간 조사관이 산재 은폐와 위법 행위를 추적하는 체계도 갖추고 있다.
이처럼 민관이 협력하는 산업안전 감시모델은 공권력의 한계를 보완하는 핵심 대안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바로 이 지점에서 ‘공인탐정제도’의 도입 필요성이 절실해진다. 근로감독관의 인력 부족과 사전 통보로 인한 한계를 보완하려면, 현장에 밀착한 제도화된 민간 감시체계가 필요하다.
산재 전문 탐정은 은폐 정황을 선제적으로 감지하고, 위험작업 관행을 기록하여 감독관의 조사에 실질적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건설현장의 불법 하청구조나 안전장비 미착용, 위험작업 강요 등의 반복 행태를 지속적으로 추적·보고함으로써 사고 예방에 기여하게 된다.
한국의 탐정 현실은 법적 공백 상태다. 탐정이라는 명칭 사용만 허용될 뿐, 자격 기준, 업무 범위, 감독체계에 대한 법적 근거는 전무하다. 이로 인해 전문성 없는 업체들이 ‘탐정’을 표방하며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은 탐정을 국가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관리하며, 산업안전, 민사조사 등 공적 기능을 수행하게 한다. 일본의 도도부현 공안위원회, 독일의 상공회의소 인증제도는 대표적이다. 한국만이 탐정제도의 법적 기반 없이 시장을 방치하고 있으며, 그 결과 산업안전 사각지대가 확산되고 있다.
산업안전 분야에서의 탐정은 단순한 민간조사원이 아니라, 사업장의 안전 실태를 분석하고, 위험 요소와 법규 위반 사례를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현장 기반 전문감시자’이다.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빅데이터 분석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나, 이는 신고 기반 자료에 국한된다. 탐정은 지속적인 현장 모니터링을 통해 은폐된 위험 요소, 반복되는 불안전 행위, 관리자의 안전의식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위험성 평가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구체적으로 탐정은 드론을 활용한 고위험 작업 모니터링, CCTV 분석을 통한 안전수칙 준수 확인, 근로자 익명 증언 수집 등을 통해 근로감독관이 수행하기 어려운 세밀한 현장 조사를 지원할 수 있다. 화학물질 노출, 소음 측정 등 전문 장비와 기술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탐정의 기술적 역량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근로자가 신고를 주저할 때 탐정의 조사보고서는 감독관의 판단 기준이 되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위한 핵심 증거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다.
물론 탐정제도 도입에는 기업기밀 유출, 불법 정보수집 등의 우려가 따른다. 하지만 이는 법률로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 엄격한 자격 요건, 명확한 조사 한계, 금지 행위 규정, 위반 시 처벌 조항 등을 마련하면 음성적 운영은 원천 차단된다. 무엇보다 개인정보보호법과 연동한 보안 규정, 전문 교육과 윤리교육을 법률로 의무화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탐정을 제도 밖에 방치하여 사회적 위험을 증가시킬 것이 아니라, 이제는 법적 시스템 안으로 편입시켜 산업안전의 핵심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산업재해는 단순한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한정된 감독 역량만으로는 모든 잠재 위험을 통제하기 어렵다. 탐정은 공인된 민간 조사전문가로서,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산업현장의 사각지대를 보완할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이다. 일터가 ‘생명을 위협하는 공간’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더 이상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민관 연계의 종합 감시체계만이 대통령이 경고한 ‘미필적 고의살인’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최순호>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 주임교수 ▲경찰학박사, 경영학박사 ▲前총경, 前대통령실 행정관 ▲K-탐정단장, K-탐정연구소장 ▲공인탐정법 등 민간조사업 관련 논문·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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