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한들은 미행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서, 태연스럽게 걸어가고 있단 말인가? 함정을 파놓고 유도작전을 쓰기로 했다면 그건 자살행위일터인데…. 왜냐하면 함정에 호락호락 빠질 어리숙한 미행자가 이니기 때문에….
“어느 지점까지 미행해갔을 때 벼락치듯 역습을 감행해서 때려잡겠다는 수작일 수도…?”
이만성은 잠시 엉거주춤했다가 고개를 흔들고 비장한 각오를 다지곤 네급놓아 뛰었다.
‘약자에게는 약하지만, 강자에게는 더없이 강한 기질의 소유자 그게 바로 나 이만성이 아닌가 말이다’하고 다지자, 더욱 힘이 솟구쳤다.
“불꽃 튀는 접전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는 판이니까. 비겁하게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엎드렸다가 기습 공격하겠다는 수작이겠지? 한사람의 미행자가 두려워서 숫적으로 우세한 너희들이 몸을 숨기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어서 덤벼라. 한판 벌여보자꾸나!”
이만성은 헉헉거리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그러나 입안에서만 씨부렁거렸다. 그는 자신이 문무(文武)를 겸비한 사나이임을 믿고 있었기에, 어디를 가나 머리로 한몫하고 체력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저력(底力)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이렇다 할 비장의 무기는 없고 유도 3단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5∼6단의 고단자를 물리칠 수 있는 실력을 믿고 있었으므로, 권총이라면 몰라도 칼이나 몽둥이 따위를 휘두르는 조무래기 또래라면 10여명 이상 떼지어 몰려온다 해도, 눈썹하나 까딱 안할 자신이 있는 사나이였다.
그런데, 이제나 저네나 하면서 조심스럽게 뛰어가고 있었지만, 함정도 복병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놈들이 마술을 부리고 있을 턱은 없고, 땅속 깊이 숨어버렸다면 몰라도 왜 보이지를 않는 것일까? 귀신이 곡할 노릇이잖아”
무모한 자신의 객기 앞에 불안감과 불길감이 엄습해오고 있음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후퇴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는 동요하면서 주춤거렸다.. 이럴 때 역습해온다면 꼼짝없이 무릎을 꿇기 십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였다. 막히면 뚫린다는 말이 어쩌면 그토록 적중할 수가 있단 말인가?
호랑이 굴에 끌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살아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을 실감나게 떠올리는 믿기지 않는 장면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50m전방에서 까딱까딱 손짓이라도 하듯 가물거리는 검은 그림자들….
녀석들은 역습을 감행하려고 숨었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36계 줄행랑을 놓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피차간에 위기국면은 풀린 셈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만성은 다시금 엉거주춤 멈춰서서 눈으로 괴한들을 쫓고 있었는데…. 잠시 후 괴한들은 ‘동남마을’ 안으로 그림자를 감춰 버렸다.
이만성은 뛰기 시작했다. 젖먹은 힘까지 발휘해서 네굽놓아 뛰었다.
이제는 미행의 단계는 지났으므로 따라잡는 문제만 남은 셈이었다.
그런데, 괴한들은 마을 안으로 들어선 다음 한복판에 널따랗게 트인 대로 위를 여유 있는 모습으로 유유히 걸어가고 있을 뿐, 한 발짝도 방향을 바꾸지 않고 있었다. 마치 산책을 즐기고 있는 엉뚱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동남마을 청년들이 아닌 셈인가? 그렇다면 저치들의 행선지는 서귀포…?”
긴장감과 궁금증은 더해가기만 했다.
“지구의 끝까지라도 추적을 계속할 각오가 이미 되어 있으니까…나를 잘 인도해라 응!”
이만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잠시후 괴한들은 마을을 벗어나 일주도로인 신작로위로 걸어 나갔다. 이만섭은 다시금 네 굽을 놓아 뛰었다.
검정색 승용차가 시야에 들어왔다.
괴한들을 기다리고 있던 승용차였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이만성은 승용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얼어붙은 듯 멈춰서 있었다. 한밤의 추적극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 셈이었다.
“문제의 승용차는 괴한들을 태우고 서귀포쪽으로 내빼고 말았다 그 말이지?”
고정관이 맥빠진 목소리로 잠꼬대하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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