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부메랑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4-09-05 19:4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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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 란 정치행정부장 {ILINK:1} 임진왜란 당시 전 민중이 합심해서 왜적과 대항해 싸웠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당시 한 의병장은 ‘쇄미륵’이라는 자신의 기록을 통해 “왜군이 쳐들어 왔는데 저 아랫것들은 의병에 모이라면 하나도 안모이고, 오히려 왜군을 환영해서 걱정이다”고 한탄했다.

그동안 국사 교과서를 통해 민족의식이 투철한 민중들이 왜군에 저항하고 게릴라전을 벌여왔다고 배운 것과는 상당한 현실적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민족이 쳐들어올 때마다 민관이 일치단결해서 싸웠다’는 역사의 기록이 거짓이라는 것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당시 왜군은 점령정책의 일환으로 동네마다 쌀과 먹을 양식을 골고루 나눠주고 있었다. 조선군이 양반이랍시고 거들먹거리며, 민중을 사람취급도 안했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민중을 착취하던 양반들이 물러나고 대신 쌀 나눠주겠다는 놈들이 들어 온 것인데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1910년 한일합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일합방 당시 지방양반들이 “창피해서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며 두문불출(杜門不出)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얼핏 떠올리면 종묘사직을 잃은 죄책감이나 나라를 빼앗긴 분노로 인해 바깥출입을 삼갔을 것으로 짐작할 수 도 있다.

그러나 막상 이들이 창피해 한 실상은 전혀 뜻밖이다. 또 한편으로 볼 때 어이가 없기도 하다.

그들은 세상이 바뀌게 됨에 따라 신분제가 폐지됐고 이로 인해 상놈들과 함께 ‘호형호제(呼兄呼弟)’해야하는 스스로의 처지를 창피하게 여겼을 뿐이다.

이는 사실상 신분제가 없는 사회에서 일치단결된 ‘민족’ 개념이 사실상 성립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지킬 것이 없는 집단과 지킬 것이 많은 집단이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는 구조 속에서는 단결된 힘을 기대할 수 없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그렇다.

물론 현대사회는 신분제 사회가 아니다. 하지만 빈부격차, 기득권 세력과 기층 민중세력간의 현저한 차이가 존재하는 한 눈에 띄지 않는 신분제는 엄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그래서 더 이상 지킬 것이 없는 민중을 너무 몰아세우는 정책은 위험하다. 결국 그 모든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 표적은 분명 기득권 세력이 될 것이다.

그동안의 역사가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역사의 행보를 신중하게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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