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한국시간) 텍사스와의 경기에서 올 시즌 258호 안타를 때려 지난 1920년 조지 시슬러의 종전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안타기록(257개)을 갈아치우는 신기원을 이룩한 `야구천재’ 스즈키 이치로(鈴木一郞·31)는 공·수를 겸비한 호타준족의 전형.
이치로는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퍼시픽리그 7년 연속(94∼2000년) 타격왕과 3년 연속(94∼96년)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하고 일본프로야구를 평정한 뒤 2001년 초 미국프로야구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한 지 4년 만에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 73년 나고야 인근 가즈가이시 도요야마쵸에서 태어난 이치로는 아마야구와 프로 입문 초기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소년 야구부 감독이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글러브를 낀 이치로는 중·고교 시절 투수 겸 중심타자로 활약했으나 소속팀이었던 나고야덴키 고교가 고시엔대회 1회전도 통과하지 못한 탓에 전국 무대에 선보일 기회가 없었다.
92년 오릭스에 신인 드래프트 4위로 입단했지만 주로 2군에서 보냈고 대타나 대주자로 나선 1군에선 93년까지 2년간 고작 타율 0.226(159타수 36안타)의 허약한 방망이로 코칭스태프의 믿음을 얻지 못했다.
이치로의 운명을 바꿔놓는 계기가 된 건 93년 시즌 후 하와이 동계리그.
이치로는 두달 간 진행된 윈터리그에서 특유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리며 배팅훈련을 소화한 끝에 비로소 타격에 눈을 떴다.
이듬 해 스프링캠프에서 괄목상대한 타격 솜씨를 뽐냈고 당시 오기 아키라 감독의 눈에 들어 중견수 겸 톱타자로 주전 자리를 꿰찬데 이어 그 해 매서운 타격감과 빠른 발로 56경기 연속 출루에 단일 시즌 최다안타기록(210개)을 세우며 타격왕과 MVP를 동시에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이치로 열풍’은 계속 이어져 단일 시즌 최고타율(0.387)을 세운 2000년까지 7년 연속 타율 0.340 이상을 올리는 고감도 타격감으로 이 기간 한 시즌도 골든글러브를 놓치지 않았고 최단기간 1000안타 등 수 많은 새 기록을 작성했다.
이 때문에 퍼시픽리그 최고의 흥행카드로 떠오른 이치로는 95년 계약 경신 때 800만엔이던 연봉이 8000만엔으로 무려 1000% 인상되는 미증유의 인상폭을 기록하는 화제를 뿌린 뒤 결국 2000년 시즌 후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 미국으로 진출했다.
작은 체구의 동양인 타자로 비춰진 이치로는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살짝 들어올린 오른쪽 다리를 시계추처럼 가볍게 흔들면서 타격 타이밍을 잡는 `흔들이추 타법’과 날쌘 발로 진가를 발휘하며 야구천재의 명성을 입증했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2001년) 역대 신인 최다안타(242개) 신기록을 세우며 아메리칸리그 타격왕(타율 0.350)과 도루왕(56개) 타이틀을 차지하며 빅리그 역대 2번째로 신인왕과 MVP 영예를 누린 것.
이치로는 2002년과 지난해에도 2년 연속 3할 타율과 60도루 이상을 기록하는 굴곡없는 활약을 펼쳤고 결국 양대 리그를 통틀어 수위타자(타율 0.374)에 오른 불붙은 방망이로 메이저리그사의 한 페이지를 새롭게 장식하는 주인공이 됐다.
일본 열도 뒤흔들렸다
스즈키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가 지난 2일 미국 메이저리그 한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세우자 일본 열도는 온통 축제 분위기다.
일본 언론들은 이날 교도(共同)통신이 이치로의 257호 안타 타이기록과 258호, 259호 소식을 긴급 뉴스로 속속 보도한 것을 비롯, 마이니치(每日)신문이 호외를 발행하고 모든 신문이 석간 4-5개면에 걸쳐 관련 소식을 전했다.
방송도 자막뉴스로 이치로의 안타 신기록 수립 소식을 전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훌륭하다는 한마디밖에 할 말이 없다”고 극찬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천부적인 재능에 남보다 갑절의 노력이 더해져 달성한 위대한 업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면서 “어떤 말로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국민영예상을 주든 안주든 훌륭하고 위대하다”고 덧붙였다.
도쿄(東京) 도심 긴자(銀座) 거리에서는 이날 길가 건물에 설치된 대형 TV마다 행인 수십명씩이 몰려 경기 중계를 지켜보다 타이 기록, 신기록이 수립될 때마다 일제히 박수로 환호했다.
나고야(名古屋)시에 있는 이치로 선수의 모교 아이치(愛知)대 메이덴(名電)고교에서도 대형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교사와 학생들이 신기록 달성 순간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환호했다.
이치로 선수의 아버지 요시유키(宜之·61)씨도 집앞 사무실에서 TV로 경기를 지켜보다 평소 좀처럼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아들이 신기록을 세운 후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는 장면이 나오자 “아주 행복한 얼굴이더라”며 눈을 가늘게 뜨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 언론들은 ‘안타의 신’, `전설의 금자탑’ 등의 제목으로 이치로에게 찬사를 보냈으며 각계 전문가들도 `일본인의 능력을 증명해 보였다’거나 `정신야구의 승리’ 또는 `이치로는 보통사람이 아니다’라는 표현으로 84년만의 신기록 수립을 반겼다.
■조지 시슬러는 누구인가
커미셔너 탄생시킨 ‘야구 천재’
시슬러는 이미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의미 깊은 스카우트 분쟁을 일으킨 야구 천재였다. 미성년자때 사인한 계약서를 파기하고 결국 분쟁 끝에 자신이 원하는 팀에 입단한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결국은 지금의 커미셔너 제도까지 만들게 한 주인공이 됐기 때문이다.
시슬러는 왼손잡이 1루수였지만 3루수와 2루수로도 나선 적이 있을 만큼 수비 실력이 좋았다.
투수로도 24경기에서 5승6패 방어율 2.35의 성적을 올렸다.
입단 6년째인 1920년에는 257안타를 몰아치는 대기록을 세웠고 1922년에는 시즌 타율 4할2푼에 당시 메이저리그 기록인 41경기 연속안타 행진도 벌였다.
하지만 절정에 이른 1923년 시슬러는 눈병에 걸려 시력이 급격히 떨어진 이후 내리막 길을 걷다 1930년을 끝으로 메이저리그를 떠났다.
통산 3할4푼의 타율에 2812안타.
눈병 때문에 3000안타도 채우지 못했다.
시슬러는 또 두 아들 딕, 데이브와 함께 3부자가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야구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딕은 훗날 메이저리그 감독을 지내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메이저리그 감독 경력을 가진 야구 명가를 이뤘다.
부자 메이저리그 감독은 시슬러 부자 외에 코니 맥-얼 맥 부자가 유일하다.
이치로 “내 생애 최고 순간”
지난 2일 세이프코필드에서 열린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홈경기에서 시즌 259개의 안타를 때려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안타 신기록을 세운 스즈키 이치로(31·시애틀)는 대기록 수립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롭게 쓴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일본어 통역을 통해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말로 대기록 작성의 기쁨을 전했다.
이치로가 이날 3회말 선두타자로 나서 올 시즌 258호째 안타를 때려 지난 1920년 조지 시슬러(세이트루이스 브라운스)의 종전 최다안타기록(257개)을 세우자 폭죽이 시애틀 밤하늘을 밝혔고 간단한 축하 세리머니를 위해 경기가 5분 가량 중단됐다.
이치로는 헬멧을 벗어 관중들의 환호에 답례하는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시슬러 딸도 대기록 축하 전해
이치로가 한 시즌 최다안타 신기록을 세운 세이프코필드에는 시슬러의 81세된 딸 프랜시스 시슬러 도셀맨이 찾아 축하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치로는 대기록 수립 후 1루쪽 관중석에 앉아있던 도셀맨에게 다가가 악수했고 도셀맨은 “내 아버지도 (살아계셨다면) 기뻐했을 것”이라며 기쁨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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