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여름 탈북하여 중국에 머물고 있었던 국군포로의 가족 9명은 작년 10월 주선양 한국 총영사관에서 우리 외교당국의 안이한 대처로 인해 동토의 땅인 북한으로 압송되기에 이르렀다.
그간 한국정부는 중국과의 마찰을 방지하고 북한의 눈치를 보면서 조용한 외교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외교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아무런 안전 사항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인이 주인인 민박집에 이들을 투숙하게 했다는 사실에 대해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탈북자 문제가 부각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이들을 관리할 메뉴얼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우리 정부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치면서도 실상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고 무관심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사건 뿐 아니라 최근 납북자 최욱일씨 사건을 비롯, 과거 국군포로 장무환, 한만택씨, 지난 해 라오스에서 체포된 김희태 목사 등을 통해 중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 지역에서 보이는 우리의 재외국민보호 관련 외교당국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되돌아봐야한다. 정부와 외교당국은 이들 사건들을 두고 ‘실무자선의 단순 실수’라고 하는데, 계속 반복되는 이런 사건들을 실무자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우리 외교 및 재외국민보호정책의 구조적인 폐단이 너무도 커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인식의 문제다. 정부가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악화를 염려해 이들을 외면해온 것은 눈치외교의 전형이며 동북아 균형자론이니 자주론이니 하며 자주외교를 외치는 겉면과 대비해 매우 모순적인 행태라고 하겠다. 북한과 중국의 눈치만 보다보니 양국을 자극할 여지가 있는 탈북자와 국군포로문제,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재외국민들의 보호문제가 소홀히 다뤄진 것은 당연지사라 하겠다.
국가정책의 기조를 이루는 위정자들의 인식이 이렇다 보니 재외공관 실무자들이 과연 탈북자관련문제에 발 벗고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무자들이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려고 해도 본국에서의 조치가 없으면 탈북자들을 돕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차원에서 탈북자들을 구제하고 지원하는 제도적인 틀을 마련하고, 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외교당국에도 각종 인센티브를 적용하게 된다면 누가 발 벗고 나서지 않겠는가?
외교적 권위를 북한과 중국정부에게 우리는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한다. 북한에게는 자국민에 대한 공포정치의 종식을, 중국 정부에게는 어떤 정치적인 이유에서든 인간의 기본권인 생존권을 위해 유랑하고 있는 힘없는 탈북자들이나 잡아들여 죽음의 땅으로 다시 내모는 것은 자칭 ‘중화’라고 부르는 자신들에게 대국적인 면모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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