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의 복수는 아닐는지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7-07-18 19:4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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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선(의정부주재) {ILINK:1} ‘이조괴담’이라는 작품에는 연산군이 참수 당한 윤필우의 처 야화를 범하려 하자 야화는 남편의 뒤를 이어 자결하면서 평소에 아끼고 사랑하던 고양이에게 복수할 것을 유언했다고 한다.

고양이로 복수 하려했던 전형적인 제3자를 통한 귀신의 복수가 아니었을까.

고사 성어인 결초보은(結草報恩)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숨어있다.

중국 춘추시대 진(晋)의 위무자(魏武子)는 병이 들자, 아들 위과(魏顆)에게 자기가 죽으면 아름다운 후처, 즉 위과의 서모를 개가시켜 순사(殉死)를 면하게 하라고 유언하였다.

그러나 병세가 악화되어 정신이 혼미해진 위무자는 후처를 자살하도록 하여 죽으면 같이 묻어 달라고 유언을 번복하였다.

위무자가 죽은 뒤 위과는 정신이 혼미했을 때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서모를 개가시켜 순사를 면하게 한다.

후에 위과가 전쟁에 나가 진(秦)의 두회(杜回)와 싸워 위태로울 때 서모 아버지의 망혼이 나타나 적군의 앞길에 풀을 매어 두회가 탄 말이 걸려 넘어지게 하여 두회를 사로잡게 하였다. 은혜를 입은 사람의 아버지 혼령이 나타나 “풀을 묶어 보답을 했다”는 뜻이다.

16일자 19면 시민일보에 개제됐던 “중장비 동원 불법 파묘 경악”이라는 제하의 기사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아닐까.

상가와 주택을 짓기 위해 포천으로 향하는 구도로인 호국사 길 옆 의정부시 자일동 141의 8번지 일대 대지 823㎡를 매입한 김씨는 그곳에 3구의 묘지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곳은 구 도로로 지나는 차량도 뜸했고 그린벨트이며 자연녹지인지라 사찰 외에는 한 두 채의 집밖에 없는 한적한 곳이었다.

김씨는 적법절차를 외면한 채 야심한 시각인 새벽 2시에 중장비로 묘지의 봉분을 없애버리고 S 장의사에 시신처리를 맡겨 그 자리에서 시신을 태워 버린다.

그러나 묘지에서 50여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던 79세의 손 할아버지는 그 시각 꿈속에서 가위에 눌려 신음하고 있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 할아버지는 관절염으로 한걸음도 걷기 어려운 상황 속에도 무엇에 홀렸는지 또 무슨 힘이 솟구치는지 한걸음에 달려가 묘지를 파헤치고 태우는 과정을 낱낱이 목격하게 된다.

다음날.
파헤쳐진 묘지와는 아무 관련 없는 손 할아버지가 보이는 열정과 행동은 정말 놀라웠다.

우선 손 할아버지는 동네 이장을 찾아 과거부터 세분상의 묘지가 있었다는 확인서를 받아 품에 넣고, 시청 그린벨트 단속 계에 고발과 동시에, 이곳에 취득한 건축허가도 무효임을 주장하며 담당자에게 확인서를 받는다.

시 담당자는 손 할아버지가 정신상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또 묘지와 아무관계 없는 할아버지가 왜, 뭣 때문에 이리 집요하게 따지는지 모르겠다며 할아버지가 요구하는 데로 “써달라는 확인서는 죄다 써줬다”고 말한다.

얼마 후 손 할아버지는 시청의 협조가 미진하다며 경기도청에도 진정서를 올리는가 하면 언론에도 자료를 보내는 치밀함을 보였다.

결국 어둠속에서 행해졌던 파묘행위는 범죄행위로 드러나게 됐고, 동네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겨우 한글을 깨우친 손 할아버지가 어떻게 그 일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는지 의아할 뿐”이라고 술렁인다.

혹시 세분상의 혼령이 나타나 손 할아버지에게 능력을 부여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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