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식보다 미술투자가 좋다>-나도 큐레이터가 되고 싶다

김유진 / / 기사승인 : 2010-03-17 11: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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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작가ㆍ미술칼럼니스트) (박정수-작가ㆍ미술칼럼니스트)

예술과 돈벌이의 갈등

2007년 8월 '한국큐레이터협회(KAMCA: Korean Art Museum Curators Association)'가 공식적으로 탄생했다. 정회원으로 등록하자면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미술관에서 5년 이상 큐레이터로 근무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한다. 3년 이하의 경력자는 준회원이 된다. 회원이아 준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문광부에 등록된 사립 181개, 공립 124개, 국립 30개 등 335개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어야만 한다.

우리 미술계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500여 개 개인 화랑의 숨은 인재들은 가입 자격조차 없다. 영문으로 씌어 있는 대로 ‘국공립 사립 미술관 박물관 학예연구원 협회’라고 해야 옳은 일이다. 어떤 방향으로 협회를 운영해 나갈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미술시장의 기본 구조인 미술품의 유통 판매가 활발한 현장의 인재들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절름발이 협회가 될 수도 있다.

열심히 일하는 사설 화랑의 큐레이터들 기죽이기 딱 알맞다. 미술품 거래가 없는 비엔날레 같은 곳보다 미술품 거래가 활발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나 화랑미술제가 더 실속 있는 행사다. 사설 화랑들이 미술계에 기여하는 바가 얼마나 큰지는 이런 행사만 비교해 봐도 분명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술시장은 한국큐레이터협회에 가입하지 못하는 큐레이터들에 의해 잘만 굴러간다.

이런 일로 사설 화랑들의 큐레이터들만 입지가 애매해졌다. 그래도 그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심히 뛰고 있다. 하지만 만만치 않다. 예술과 돈벌이는 원래 서로 갈등을 일으키게 되어 있는 구조 아닌가. 고급스런 드레스 입고 우아하게 차 마시는 곳이 화랑이 아니듯, 큐레이터라는 직업도 생각보다 그리 우아하지는 못하다.

큐레이터의 일은 무척 많은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다. 물론 창조적인 머리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1년이 다 가도 전시 기획 한 번 못해본 큐레이터가 많다. 몇 년이 지나도 그림 한 점 팔아보지 못한 큐레이터도 있다. 그림 파는 것은 장사꾼이나 하는 일이지 고상한 직업을 가진 큐레이터는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화랑을 하다보면 전시 홍보를 위해 언론사 기자 만나 식사 대접도 해야 하고, ‘손님은 봉’이기 때문에 호객 행위도 해야 한다. 하지만 큐레이터의 생각은 딴 데 있다. 화랑주는 돈 벌어주기를 원하는데 큐레이터는 사회적 책임 어쩌구 하며 예술은 고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큐레이터는 전시에 참여시킬 예술가를 선택할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에 예술가더러 오라 가라 한다. 전시장 청소를 해도 외부에서는 고상한 ‘큐레이터 선생님’이다.


열심히 일해야 아름다워지는 직업

우리나라 화랑이 500개가 넘는다. 이렇게 많다 보니 능력이 탁월한 큐레이터도 많다.

지금은 사간동 모 미술관에서 일하는 친구는 능력이 참으로 많다. 1998년 여름에 처음 만날 때만 해도 무작정 미술계에 오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간절하던 친구였다. 그러나 대학 생물학과를 졸업하더니 근처에 있는 대학 예술학과 3학년에 편입하여 열심히 노력한 친구다. 학교 공부와 현장 학습을 겸하면서 미술 관련 일들을 몸으로 체험하기 시작했다.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해 국제 행사 때는 통역도 하고 한국과 외국의 연락책이 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무보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화랑에 취직했을 때는 초봉을 70만원 받았다고 한다. 현장에서 일하면서 신림동에 있는 대학원에 가서 미술 이론을 전공했다. 학업을 마치고 강남에 있는 신설 화랑에 2년을 다녔다. 그리고 잠시 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왔다. 지금은 꽤 많은 보수를 받으며 사간동 미술관에서 일한다.

작품 배달, 전시장 디스플레이, 작품 매매, 매니지먼트, 연구, 전시 기획 등등 큐레이터는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참 많다. 큐레이터가 되는 순간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면 누구나 아름다운 큐레이터가 된다. 체력도 좋아야 한다. 남성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여성은 작품 운반과 설치가 힘겹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가져야 한다. 미술관에서 일한다면 좀 더 편하겠지만 개인 화랑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한다면 작품 판매 실적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을 많이 느낀다. 기획전을 하면서 작품 판매 몇 건이라도 성사시켜야만 월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모든 권한을 큐레이터에게 일임한다면서 야심차게 출발한 화랑이 있었다. 전시 행사를 할 때 모든 비용을 화랑이 지불하는 대신 큐레이터가 그만큼의 수익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모집하였다. 시기적으로 빠른 감도 있었지만 그만한 일을 해낼 만큼 영업 능력이 탁월한 큐레이터가 당시에는 없었다.

상업 화랑에서 일하는 사람을 큐레이터로 보면 안 된다는 말도 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일하는 학예연구원만 큐레이터라는 것이다. 정확한 말이다. 외국에서는 그게 정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화랑에 취직하는 순간 큐레이터다. 남들이 아니라고 하건 말건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

박다원의 Komborera(아프리카 언어로 God bless you)는 마음이 가는 대로 가고자 하는 철학적 사고에서 시작된다. 그의 붓질은 지혜와 깨달음을 향한 마음의 자세이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기운과 절제된 감흥을 표현한다. 있음과 없음, 음과 양이 한 공간에서 소통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추상화이다.

박다원, komborera, Mixced media on canvas,146x97c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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