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불신의 악순환에 빠진 남북관계

안은영 / / 기사승인 : 2011-08-29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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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발리회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북관계는 교착상태다. 발리발 대화국면이 이처럼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고 만 것은 발리 회담 자체가 남북의 자발적 의지가 아니라 억지춘향식의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발리 회담은 미국과 중국의 요구로 남과 북이 마지못해 마주 앉은 자리였고 때문에 이후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지기는 애초부터 무리였다. 등을 돌리고 있던 남북이 억지로 떠밀려 마주 앉긴 했지만 여전히 신경전만 지속하고 있다. 스스로 내켜서 만난 게 아니었기에 마주 앉고서도 상대방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굴복하기를 요구하는 팽팽한 기싸움 뿐이다. 상대방의 태도변화만을 기다리며 자신이 먼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셈이다.

발리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진전되지 못한 데에는 또 다른 더 큰 원인이 존재한다. 그것은 북한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 갖고 있는 해소할 수 없는 불신 때문이다. 발리 회담 직후 통일부는 관광재개 문제를 논의하자며 금강산 관광 실무회담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사업자와 재산권 처분문제를 논의할 뿐이라며 당국간 회담을 거부했다. 오히려 북한은 미리 예고한 대로 남측 사업자의 재산을 법에 따라 몰수하는 조치를 강행하고 말았다.

예상 밖으로 북이 강경한 입장을 보인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다 있다. 그것은 금강산 관광 회담에 관한 한, 북한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2010년 2.8 금강산 실무회담은 북에게 최악의 심리적 외상을 안겨 주었다. 북이 양보에 양보를 거듭해서 어렵사리 회담이 열렸지만 이명박 정부는 예의 3대조건만 기계적으로 되풀이했고 북의 주장과 요구에 대한 대안은 없는 채로 관광재개가 불가하다는 입장만을 반복했다. 관광재개를 위한 남북회담이 결국 관광불가 입장을 북에 통보하는 장소가 되고 만 셈이다. 2.8 회담의 잊지 못할 트라우마로 인해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또다시 관광 실무회담을 제안했다지만 회담이 개최되기만 할 뿐 남측이 관광불가라는 입장만을 반복할 것이라는 의심에 사로 잡혀 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먼저 관광 재개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남측의 실무 회담 제의에 섣불리 응하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관광재개의 희망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절실하게 원했던 금강산 관광 재개였지만 이제 북한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고 남측과의 관광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져 있다. 최근 새로운 특구법을 만들어 현대아산의 독점권을 부인하고 남측의 재산권 처분에 들어간 경위도 같은 맥락이다. 금강산 관광 재개를 둘러싼 북한의 대남 불신은 이제 북으로 하여금 어떤 기대도 하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지난 경험을 통해 형성된 북한의 대남 불신은 금강산 관광 회담 거부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수해지원 제의에 대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자신들이 요구한 쌀과 시멘트를 거부하고 라면과 초코파이를 제공하기로 한 이명박 정부의 협량함에 대해 북은 묵묵부답으로 대응하고 있다.

남북관계 교착의 원인이 북한의 대남 불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측 역시 북한에 대해 기본적인 신뢰를 갖지 못하고 있다. 북이 금강산 관광회담에 대해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면 이명박 정부도 북에 대해 연평도 포격이라는 씻지 못할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지난 해 천안함 사태와 5.24 대북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수해를 복구하기 위해 쌀과 시멘트를 포함한 100억원 규모의 지원품을 제공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도 순조롭게 열렸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풀리는가 싶던 그 해 11월 이명박 정부가 북으로부터 받은 것은 연평도 기습포격이었다. 방심하고 있다가 졸지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다. 연평도 포격이라는 사상 초유의 군사적 도발을 겪은 이명박 정부는 여간해서 북한을 신뢰하기 힘들게 되었다. 언제라도 북한은 도발할 수 있다는 경계심과 절대 북한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불신감이 이명박 정부에는 강력하게 자리잡은 것이다.

발리 회담 이후 남북이 서해상에서 포격을 주고받은 사건이 난 것도 이같은 불신의 전형적 반영이다. 북은 사진까지 공개하며 발파작업이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해상 포격에 대한 정당한 대응사격이었음을 강조했다. 남측의 대북 불신은 뜬금없는 김관진 국방장관 암살조 잠입보도가 주요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데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신임 검찰총장 취임사에 종북세력 척결이라는 단호한 경고가 포함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남과 북의 상호 불신은 발리 회담 이후에도 남북관계가 개선되지 못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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