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동성서침례교회 김우생 목사) 사도요한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고 기록한 말씀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하여 3가지 분명한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영이시니(요4:24) 2. 하나님은 빛이시라.(요일1:5) 3.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8,16)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셨다는 사실 때문에 감격하였으며 그 사실에 압도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자신을 가리켜서“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요21:20) “그의 사랑하시는 자”(요13:23)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무엇보다 더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선언하였다.
본문 7,8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요일4:7~21까지 우리 말 성경에 27번 사랑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 그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이다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8절에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외할머니를 따라 물 맞으러 가본 적이 있습니다. 바위 위에서 떨어지는 물을 수건을 머리에 쓰고 맞습니다. 폭포수 같이 쏟아지는 물이 어디에서 흘러나오는지 신기하여 제가 바위 위를 올라 가 보았습니다. 거대한 산 지리산 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물이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요? 그 원천은 누구입니까?
본문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언합니다. 다시말해서 그 사랑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아니함은 하나님은 비인격체이거나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체이시며 사랑이 하나님을 정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을 정의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랑이시라고 말씀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났다.
본문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자체는 만져볼 수 있는 형질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최고로 값진 것이지만 항아리에 담아 둘 수도 없고 금고에 넣어 둘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시고 증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타난 바 되었으니’라는 말은 가시적인 것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을 아들을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볼 수 있게 되었다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천사도 아니고 어떤 피조물도 아니고 아들과 함께 하시는 즐거움도 버리고 그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구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인 롬3:25에서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은 자기 의로우심을 희생하지도 않으시고 또한 자기의 사랑을 희생하지도 않으신 것입니다. 그는 사랑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실천 되어야한다.
제 부모님이 저희 7남매들을 바라보면서 너희끼리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던 것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서로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래야 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3번이나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새 계명입니다.(요13:34,35)
왜 사랑하여야 하는가요? 예수님으로부터 그런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 때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아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왔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시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들의 삶 속에서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하게 됩니다(요일4:12).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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