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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동성서침례교회 김우생 목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을 닮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품격이 절제라면 절제는 반지의 작은 보석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품격과 사명을 감당하신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희생은 반지의 중앙 맨 위에 우뚝 솟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 속에 있었으며 단순한 삶을 사시고 조용한 시간을 추구하셨으며 매일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뜻을 순복하셨습니다. 겸손히 자기를 낮추시고 기도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파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은 절제로 다스려진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역사적인 인물과 구별 되는 부분은, 그분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그가 구주로 동일시 되는 것 - 그의 희생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삶의 목적, 그의 간절한 소원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죽으심을 본받기' 원했습니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기까지 계속해서 변화되기를 사모했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주 예수 닮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희생으로 단련된 사람이 되십시오!
로마서 12:1에서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원론을 말한 후에 '산제사'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에 성도들에게 권면했습니다. (엡 5:1~2)
여기서 우리는 두 단어를 유의하게 됩니다. '제물과 생축'입니다. 영어성경은 드림과 희생의 두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는데, 둘 다 어떤 사람이 무엇인가를 포기한 것을 뜻합니다.
드림은 자의적인 행위입니다. 희생은 훨씬 더 나은 어떤 것을 위하여 가치 있는 어떤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친구들과 제자들에게 산상설교를 하셨습니다. 재물을 쌓아두는 문제와 무엇을 가치로 여기는가에 대해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값이 있다는 것을 상기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희생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이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좀이 먹고 옷이 못쓰게 되고 동록이 슬어 쇠붙이도 못쓰게 되며 도적이 도적질해 갑니다. 그리고 26절에서 유머가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개인적인 희생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는 이가 누구인가'를 선택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의지하는 것을 섬기게 마련입니다.
재물을 쌓는 것은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믿음 대신에 물질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창 22장은 아브라함이 그의 불신앙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승리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결혼한 이후 아이를 기다려 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수십 년 전에 아들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아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한 모든 약속은 이 한 아들에 달려있었습니다. 이삭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의 즐거움, 그의 미래, 그의 꿈 등. 그런데 어느 날 밤 주님께서 아브라함의 세계에 개입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 22:2)
아브라함이 그날 밤 밤잠을 설치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용사이었지만 그도 사람이었습니다.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아이의 생명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우선순위를 검토해 보고 그의 믿음을 점검해 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듬지 않았습니다. 그의 음성은 분명했습니다. 그는 명령하셨습니다. “네 아들을 희생하라!” 아브라함은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창 22:3~5)
물질적인 희생은 돈과 소유에 대한 사랑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경험으로 본다면 3가지 희생 중에 제일 쉬운 부분입니다. 개인적인 희생과 관계적인 희생을 잘 하는 분이라면 물질적인 희생은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개인의 보물의 문제가 해결되고 관계의 소중한 분을 희생할 수 있다면 재정문제는 큰 의미가 안 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보냅니다. 비록 그가 옥에 있지만 그가 복음을 전하고 개척하여 성장해 가는 교회를 생각하며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사랑하였고 신뢰하고 그의 사역을 후원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주는 교회이었습니다. 바울은 감사가 넘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빌 4:15~18)
15절에 보면 빌립보 교회는 유일하게 연보한 교회이었습니다. 16절에 보면 그들의 연보는 한 번 그리고 또 다시 반복했습니다. 18절에 보면 최근에 보낸 연보 그리고 풍성한 연보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향기로운 제물 희생이었습니다. 빌립보 교회 편에서 보면 희생이었습니다. 바울은 19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키며 그들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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