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동성서침례교회 김우생 목사
빌립보서신은 바울의 옥중서신 중에 하나로 분량이 104절 되어 있는, 긴 서신은 아닙니다. 옥에서 기록한 서신이지만 서신의 주제는 기쁨이요 교제이며 그리스도인의 태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보배로운 서신입니다. 특히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성령께서 내 심령 속에 역사하시므로 내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빌립보서를 쓰기 10여 년 전 빌립보에 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바울은 10여 년이 지난 후에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하며 옥 속에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들은 그의 이름만으로도 감격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하나님의 사람이며 목사와 교사 그리고 그들의 지도자였습니다. 또한 친구였습니다. 바울은 자기 이름만 아니라 디모데의 이름을 같이 나란히 썼습니다. 디모데는 ‘그의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이 하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가 속히 받고자 했을 것입니다.
종으로부터 성도들에게
바울과 디모데는 그들을 소개할 때 위대한 사도로 초인적인 지도자로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 동키호테 같은 독불장군이나 예배 받아야 할 ‘영웅’처럼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종으로 보았습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여기에 주님을 닮은 “위대함”이 있습니다.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목사와 집사들을 포합해서 모든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흥미 있는 사실은 성도라는 단어입니다. 성도라는 단어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목적으로 갈라놓은 사람’, ‘구별한 사람’ ‘헌신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하나님 쪽으로 구별해 놓은 사람들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의미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구원 받은 사람들은 성도(聖徒)라는 명칭을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寶血)로 구별(區別)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 헌신(獻身) 된 사람, 위임된 사람을 성도(聖徒)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2절)
바울은 성도들에게 무엇을 기원하고 있습니까? 은혜(恩惠)와 평강(平康)입니다.
은혜(恩惠)는 우리가 받을 아무런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거저 베풀어진 은총입니다. 평강(平康)은 우리의 외부적인 환경에 전연 영향을 받지 않고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입니다. 위로부터 은혜를 입고 안에는 평강이 있는 사람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습니까!
바울은 무엇 때문에 빌립보 성도들을 감사(感謝)하게 생각하였습니까?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빌1:3~5)
바울은 빌립보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과 교제(交際)한 것에 대한 후회(後悔)가 없었습니다. 좋지 못한 감정(感情)도 없었습니다. 해결하지 못한 알력(軋轢)도 없었습니다.
지난 10년을 되돌아보고 생각하면서 조용한 미소를 짓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을 생각하며 물질로 도왔습니다. 복음 때문에 바울과 교제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도왔습니다.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빌1:3~5)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통치하신다는 확신(確信)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시작하시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이루신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확신은 그의 마음속에 기쁨이 기숙(寄宿)하게 합니다.
“착한 일”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한, 거듭나게 한 사역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그리스도 예수의 날” 예수께서 공중에 다시 오시는 날, 구원 받은 우리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덧입을 것입니다. 온전한 구원, 영화의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착한 일을 시작하신 때부터 그때까지 우리의 구원이 확실히 보존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의 성장이 미진함을 보이는가? 내 남편은 언제나 변화 될까? 내 아내는 언제나 변화될까? 내 아들 딸들은 언제나? 나의 부모는 언제나?
그러나 시작하신 이가 마치실 것을 확신하십시오. 그러면 격려를 받고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쁨을 빼앗아가는 도적들이 있습니다. 염려, 스트레스, 두려움입니다.
염려(念慮)는 일어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어떤 일에 대하여 터무니 없이 걱정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염려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관찰의 결과입니다. 염려는 기쁨을 빼앗아 가는 도적입니다.
염려와 스트레스 두려움이 함께 있으면 사실보다 훨씬 악화시킵니다. 이 기쁨을 빼앗아가는 도적들을 두고 어떻게 할 것인가? 본문 6절로 돌아가십시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6절)
매일 하루를 시작하면서 이 말씀을 묵상(?想)합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의뢰하고 쉽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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