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적 급진주의의 혈전(血栓)이 민주당의 심장을 멈추게 하다.

김영환 / / 기사승인 : 2013-04-02 16: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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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의 영화음악 ‘One Day More’의 가사 중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Every Man will be a king!’



그 날이 오면 모든 사람들이 군주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Every Man은 바로 프랑스 혁명의 주인공이었던 일반 시민들이었습니다.



지금 국민이 왕처럼 대접받아야 마땅한 데, 야당과 진보진영은 자신이 왕이 되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있지는 않은가!



486 정치인 모임인‘진보행동’이 해체선언을 했습니다. 운동권 출신으로 정치를 시작한지 벌써 10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저 또한 같은 경험을 했었고 운동권 경력은 그들 보다 좀 더 오래되었습니다. 그들의 반성과 성찰은 마땅히 저의 것입니다.



“2007년 대선 패배 이후엔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에만 몰두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너희들이 말하는 새로운 대한민국이 뭐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실력 경쟁을 했어야 했다. 대선 패배 후 우리 당 일각에선 진보를 과도하게 내세워서 졌다는 시각이 있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국민은 경제민주화나 보편적 복지에 대해 상당 부분 동의했다. 진보적 담론은 시대정신이다.”('진보행동' 해체선언 후 인터뷰)



이 글만 보아서는 과오나 반성을 특별히 찾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반성은 해야겠고 반성할 것은 없고? 진보에 치우쳐서 진 것은 아니라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좀 더 냉정해야 합니다.



憲載에서 긴급조치 1,2,9호가 違憲이라는 판결이 있었습니다. 저는 치과대학 본과 3학년이던 1977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20개월간 두 차례에 걸쳐 투옥되고 9년 동안 대학으로부터 두 번 쫓겨났습니다. 1980년에는 저와 아내가 수배와 투옥이 되어 나란히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가 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는 기술 자격증을 6개 가진 전기기술자 생활, 복학 후 서점운영, 그리고 입학한 지 15년 만에 의사가 되어 병원을 경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치를 하면서 저의 이런 경험들도 평범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삶과 밀착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고, 뭔가 그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런 괴리를 ‘돈도 벌어야 지’하는 나이브한 생각과 ‘돈 벌어야 산다’는 절박한 생각 사이의 간극이라고 말해왔습니다.



저는 486의원들의 계파해체 선언을 높이 평가합니다. 또한 과거의 실패를 반성하면서 ‘이데올로기로서의 진보’가 아니라 국민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생활진보’를 추구하겠다는 다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러나 문제의식의 부족, 진정성의 미흡이 느껴집니다. 지난 10년 간 두 번의 총선과 두 번의 대선에서 연달아 패배하고 침체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민주당의 현실에서, 치열하고 전면적인 반성과 새로운 방향모색이 필요합니다.



486 정치인들은 당 운영과 선거에서 핵심적 역할을 해왔습니다.‘진보행동’은 2011.3월‘민평련’및 이른바‘친노세력’과 함께 당내 최대 계파인‘진보개혁모임’을 결성하여, 야권연대, 민주통합당 창당, 4.11 총선, 12월 대선 등을 주도해왔습니다. 진보개혁모임은 당내‘진보파’가 총결집한 당내 당이었고‘진보행동’은 그 중요한 한 축이었습니다.



주류당권세력인 진보파는 당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외부 진보정당, 시민세력에게 끌려 다니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결과적으로 당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분열되었습니다. 결국은 총선과 대선에서 연달아 패배하는 그 모든 문제의 근원이 잘못된 노선에 있었습니다. 단순한 야권연대통합 노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는‘더 진보적인 민주당’‘더 과감한 정치투쟁’‘진보정당과 시민세력에 대한 더 많은 양보’‘당원 보다는 일반시민 위주의 국민참여경선’‘정치투쟁과 연대통합에만 매달리느라 중산·서민층의 사회경제적 삶의 문제 소홀’등 많은 문제점들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그 한가운데‘관념적 급진주의’가 자리하고 있었고, 이 혈전(血栓)이 결국 민주당의 정권교체의 심장을 멈추게 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으며, 문제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대부분의 486정치인들은 2000년 총선 때부터 이른바‘젊은 피’수혈의 명분 하에 민주 대 반민주의 투쟁경험만을 소롯이 간직한 채 정치권에 진입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다양한 모습을 띄고 있었습니다. 운동권에서 출발해 쉽게 정치권에 안착한 우리들은 서민들의 생활인으로서의 삶과 괴리된 이념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따라서 현실적인 생활상의 문제 -소위 먹고 사는 문제- 를 더 절실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고와 경향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주관적 관념주의의 뿌리가 깊이 박히게 되었습니다.



첫째 반성, 우리는 소시민적 삶에 대한 예의가 부족했습니다.



우리는‘소시민적’이라는 말을 운동권에서 이탈한 사람들을 비판할 때마다 사용했습니다. 그만큼 소시민적인 삶을 우습게보았고 그런 만큼 관념적이었습니다. 운동권의 우리가 함께 하려고 했던 기층 대중이 바로 그 소시민들이고, 시민운동이 찾아 헤매던 시민이 바로 그들이었는데도 말입니다.



486운동권 정치인과 저를 포함한 이른바 ‘진보파’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존심 굽히고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소민적인 삶을 처절하게 살아본 적이라도 있었던가! 지금 국민들은 그것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정치권에 짜증을 내는데, 우리는 예전의 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진영논리와 이념에 매달려 소모적 정쟁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우리들은 진작 가정의 소박한 행복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삶에 정치의 초점을 맞춰야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노사모의 출현 또한 신선했고, 노대통령의 서거 후에‘폐족’을 자처했던 親盧세력이 다시 부활했으나, 그들의 일부행동은 국민의 눈으로 볼 때는 현실 생활의 고단함을 체감하지 못하는‘관념론에 빠진 이상주의자들’이라는 인상을 주었을 지도 모릅니다.



둘째 반성, 우리는 도덕적 우월감으로 선민의식(選民意識)에 빠져있었습니다.



‘감옥에 가고 목숨 바쳐 싸울 때, 당신들은 뭘 했는가’하는 도덕적 우월감은 우리들만이 정의의 사도(使徒)라는 선민의식을 뿌리내리게 했습니다. 끼리끼리 만나 동질성을 확인하면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해 버렸습니다. 점차 우리는 국민에게서 멀어져 갔습니다.



하지만 30대·40대 구체적인 삶의 생살을 겪지 않고 건너 뛴 채, 예전에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지금도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논리는 허구입니다. 70, 80년대의 선구자적인 헌신과 투쟁으로 국민의 지지와 사랑을 받았던 기억은, 한편으로는 자기 확신과 자부심으로 남았으나, 저 깊은 내면에서는 독선의 독버섯으로 자라났습니다. 이런 추억(?)을 머릿속에서 씻어내야 합니다. 우리는 국민의 발을 씻는 세족(洗足)의 자세로 돌아가야 합니다.



셋째, 운동권 체질을 극복하지 못하고 투쟁적 정치문화에 함몰되었습니다.



과거 민주화운동의 관행과 체질이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밑바닥에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이해관계의 조정과 타협이라는 정치의 속성을 외면한 채 진영논리에 따른 대결의 정치를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운동의 추억 속에 걸핏하면 자기고백적인 선명성과 이념과잉의 투쟁적 정치문화에 빠져들었습니다.



국민은 우리 정치인에게 문제의 해결을 원합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로 비쳐지는 운동권 체질을 벗어 버리라고 말합니다. 국민은 우리에게 이념에 빠지지 말고 현실, 다시 말하면 민생을 직시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럼에도 민주 대 반민주의 진영논리가 선과 악,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대결투쟁 논리로 이어졌습니다. 이분법적인 사고와 대결의 논리는 민주화 이전 시대에 습득된 편향이었습니다. 거기에는 국민의 사회경제적 삶의 고통,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서민대중의 절실한 염원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FTA, 제주해군기지, 종북 문제 등을 다루는 과정에서, 반MB, 반새누리당 전선에서 정치투쟁과 선명성 경쟁에 빠져 들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의정단상을 버린 채 시청 앞 집회의 전면에 서고, 국회 본청 계단을 시위장으로 전락시켰습니다.


교정에서 또는 거리에서 최루탄에 맞서 싸우던 모습은 그대로 의정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의 지도자들이자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운동권적 사고와 행태를 혁파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486 정치인은 우리의 자산이자 자부심입니다.



앞으로 민주당에 수많은 人材들이 영입되고 그 전문성의 영역이 넓어진다 해도 우리의 역사, 민주화운동의 전통은 소중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가치이며 시대의 기록입니다. 민주당은 민주주의를 위한 헌신 속에서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로 성장한 정당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자산을 소중하게 간직함과 동시에 변화된 시대에 맞게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지난날의 영광과 자부심이 새로운 변화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제 지난날의 운동권적 체질과 관념적 급진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합니다.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한 과감한 선택과 발상의 대전환을 통해 변화하는 민주당, 현실과 국민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민주당원이 되어야 합니다.



486을 포함한 운동권출신 정치인, 우리들이 바로서야 민주당이 바로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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