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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들라면 나는 서슴치 않고 겸양의 미덕을 첫 손에 꼽는다. 바꾸어 말하면 겸양이나 겸손의 반대말에 해당하는 오만이 사람의 살아가는 도리를 해친다는 뜻이 된다.
나는 역사를 학문으로 읽고자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세월을 거기에 매달려 있었던 탓으로 선대의 사람들이 겪었던 일들은 눈여겨 살피면서 그분들의 지혜와 겸손을 배우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겸양의 미덕을 소중히 하였던 사람들은 후세에 빛나는 명예를 남겼고, 그 영광과 명예를 자손들에게 까지 누리게 하였으나, 오만으로 양식을 무너뜨렸던 사람들은 자신은 물론 후대에게까지 불명예에 덫을 물려주었다는 교훈에서 사람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는 뜻이다.
조선조 시대의 삶은 오늘과 같이 복잡하지 않았음으로 대형 사고라는 것도 오늘과는 달리 비교적 단순한 편이었다. 예컨대 자연의 재해로 인한 홍수나 가뭄이 들어서 농사를 망쳤다던가, 전염병이 창궐하여 무수할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과 같은 경우가 나라의 운세를 불길하게 하는 대형 사고에 해당되었다. 이같이 어려운 처지에 직면하면 영의정을 비롯한 좌의정, 우의정 등의 정승이나 고위 관직들은 서로 경쟁을 하듯 사임 상소를 올려서 자신의 부덕함과 무능함을 자책한다. 자연이 안겨다준 재해를 어찌 인력으로 감당할 수 있으랴만, 그래도 고위관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양식과 책임의식을 보여주는 가막힌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임금도 몸소 백성들에게 머리를 숙여서 구언(求言)을 청한다.
“과인이 부덕하여 오늘과 같은 난국을 맞았도다. 신민(臣民)들은 이 어려운 난국을 헤쳐 나가는 방도를 적어 올리라…”
정말로 치자의 도리요, 겸양의 미덕이 아니고 무엇인가. 임금은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군주지만 이 같은 겸양의 미덕으로 발휘하고 있었던 탓으로 백성들의 존경과 신망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사정을 어떤가.
사회가 발전하고 소득이 높아진 만큼 대형사고도 많아지고, 또 그것이 인재로 빚어진 경우가 허다한 데도 도무지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없다. 지난 날 군사 정권에 시달리면서 살고 있을 때는 대형사고가 터지 때마나 그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한심한 작태를 보여주곤 하였다.
“물러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먼저 수습하는 것이 급하므로….”
이런 식으로 밍기적 거리다가 많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그것은 결단코 웃음거리로만 끝낼 일이 아니다. 역사가 그런 사람들의 행적을 적어서 후대에 전한다는 사실을 중요하다.
우리는 독재와 쿠데타, 유신, 문민 등의 참으로 굴곡이 많은 세월을 거치고서야 오늘의 부흥을 누리게 되었고, 또 20-50클럽이라는 세계 7대 무역대국으로 우뚝 서게 된 것도 역사의 흐름으로 본다면 사필귀정이 분명하지만, 정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언제나 아슬아슬하기 그지없다. 까닭은 간단하다. 역사인식이 부족한 탓이다. 겉보기에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학벌과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어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것 같지만, 제나라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점에서는 어느 누구에도 합격점을 줄 수가 없다. 착각하면 안 된다. <태정태세문단세…>를 아무리 줄줄 외워도 그것이 곧 역사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나라의 사정이 어려워지면 절대 권력자인 임금도 <구언>을 청하여 백성들의 뜻을 물었다. 영의정을 비롯한 정승들과 유능한 판서들이 있었는데도 현실의 타개책을 백성들에게 물었던 임금님의 겸손함을 배우지 않고서는 선정(善政)이란 말도, 소통(疏通)이라는 말도 모두가 공염불이라는 사실을 알지 않고서는 온전한 나라를 만들 수 없다.
대통령이여, 정치인들이여. 제발 <구언>을 청해서라도 국민들의 말을 좀 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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