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핵능력 고도화 시간 줘"
[시민일보=이대우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2일 6자회담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처음으로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을 제안했다.
4차 핵실험을 계기로 대북 정책의 기본틀을 대화에서 압박으로 전환하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전망된다.
한ㆍ미ㆍ중ㆍ일ㆍ러 간 사실상 대북 제재조치에 초점을 맞추는 플랫폼 추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외교부·통일부·국방부 등 3개 부처로부터 '튼튼한 외교안보 및 평화통일 준비'에 대한 새해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관련 당사국들이 있어서 쉬운 문제는 아니겠지만 6자회담만이 아니라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을 시도하는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접근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대북 정책의 효과 제고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예시를 든 것이지만 사실상 당사국들에게 5자회담을 제안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5자 회담 제안 이유로 "과거 6자회담이 북핵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는 틀로 유용성이 있었지만 회담 자체를 열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회담을 열더라도 북한의 비핵화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실효성 문제가 제기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한 6자회담은 북한의 거부로 2008년 중단됐다. 비핵화 사전조치를 압박한 한ㆍ미ㆍ일과 조건없는 회담 재개를 주장한 북한의 입장이 맞서면서 8년째 열리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한ㆍ미ㆍ일 3각 공조와 한ㆍ중 밀착으로 6자회담 복원을 위한 노력을 추진해 왔지만 이날 처음으로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는 이번 핵실험으로 북한에 핵 포기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회담 재개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핵 포기 의지가 없는 북한을 상대로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을 재개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6자회담 재개에 시간을 낭비함으로써 거꾸로 북한에게는 핵 능력을 고도화할 시간을 벌게 해줬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을 통해 대북 압박외교의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림으로써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계산인 것으로 보인다.
대화와 신뢰에 기반한 비핵화 메커니즘인 6자회담 대신 대북 압박 중심의 5자회담을 제안한 것은 대화와 응징이라는 기존 투트랙 대북정책의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게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당장 북한과 급하게 대화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원칙 있게 접근하는 것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가장 빠른 길"이라고 말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미·일 정상과의 연쇄 통화 등 4차 핵실험 이후 박 대통령이 보여준 행보를 감안할 때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의지를 보일 때까지 대화는 접어두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북 압박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다만 북한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의 동참을 끌어내는 것이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어려울 때 손을 잡아주는 것이 최상의 파트너"라며 대북제재 동참을 독려했지만 여전히 중국은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5자회담 성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박 대통령도 이를 감안한 듯 "중국 측의 협조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며 "중국은 그동안 한반도의 핵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수차례 밝혀왔는데 이번에야말로 북한이 핵개발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란과 같이 국제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효과 있는 조치를 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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