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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故) 하상숙 할머니.(사진제공=연합뉴스)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따르면 하 할머니는 1928년 충남 서산에서 출생했다.
하 할머니는 1944년 16세의 나이에 ‘공장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갔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에 체류하다가 60년 가까이 지난 2003년에야 귀국했다.
이는 종전 이후 하 할머니가 중국에 ‘조선 국적’으로 남았으나, 분단 과정에서 중국내 조선 국적이 모두 북한 국적으로 분류되는 바람에 1999년 한국 정부의 국적회복 판정을 받기 전까지 북한국적으로 갖고 중국에 체류해야만 했다.
한편 하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 등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2000년 일본 동경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 위안부 피해를 증언하기 위해 증인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하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국내 생존자는 36명으로 줄었다. 빈소는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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