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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민주주의는 유리컵처럼 부서지기 쉽고 항아리처럼 깨지기 쉽다. 이를 지켜내기란 정말 힘들다. 그런데 한동안 그 기세가 드높아서 정반대의 국면을 잊고 있었다. 1970년대 말부터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글로벌 차원의 확산이 이루어지면서 국경과 시장을 개방하지 않은 나라라고 해봐야 북한 정도이고, 독재, 장기집권, 군사쿠데타, 인권탄압 등도 상당히 위축되었다. 21세기에 접어들면 훨씬 더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 세계인들도 많았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인류 사회는 거세지는 역사의 반동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독재 정권이 물러나거나 대규모 민주주의 시위가 목표를 이뤘을 때 ‘민주화의 성공’이라거나 ‘민주화 임박’이라고 기대했지만, 최근 1~2년 사이 이들 국가 대부분이 다시 반민주 독재로 돌아가기도 했다.
2011년 시작된 ‘아랍의 봄’은 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뜨거운 성원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성적표는 처참했다. 이집트·리비아·튀니지·예멘·시리아 등지에서 자유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현재 제대로 보장되거나 정착한 나라는 사실상 없다. 이집트·시리아는 권위주의 통치 체제가 오히려 강화됐다. 리비아·예멘은 내전으로 얼룩졌다. 튀니지는 2021년 7월 대통령이 총리를 해임하고 의회를 정지시켜 독재의 초기 단계에 접어들었다.
최근 민주주의를 빼앗긴 지역과 나라도 많다. 2014년 홍콩에서 사실상 통치권자인 행정장관의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 혁명’이 일어났을 때 과거와 같은 자유로운 민주주의 체제를 기대하며 공고해질 것을 바랐다. 그러나 중국이 홍콩을 장악한 상황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집권 이후 정반대로 전개되었다. 2020년 5월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중국의 직할 통치를 강화한 가운데 2021년 3월엔 직선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선거제 개편안을 확정했다. 이젠 홍콩에 이어 대만마저 중국에 의한 침공 위협이 나날이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2016년 3월 미얀마에서 문민 정부가 54년 만에 출범하자 장미빛 미래가 펼쳐지리라고 보았다.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던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정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사독재를 끝내려는 시도가 끝나고 겨우 5년이 지나기도 전인2021년 2월 미얀마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며 과거로 돌아가 바렸다.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국의 완전 철수에 따라 20년 만에 탈레반이 다시 집권했다. 지금은 세계 그 어떤 나라 보다 더 극심한 반인류적·반인간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탄압은 역사적으로도 손꼽힐 정도다. 탈레반은 “아프간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며 이슬람법에 따라 통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제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들인 중국, 러시아, 이란, 튀르키예(이전 터키) 등을 중심으로 독재자의 1인 지배 장기집권 아래에서 전체주의적 권위주의 정권이 강화되고 있다. 급기야 2022년 2월 세력 확대와 패권 확장을 추구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전면 기습 공격하며 전쟁을 시작하며 코로나 사태와 함께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의 변화를 경험하게 만들고 있다.
아마도 상당수의 세계인들은 정말 놀랐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2030세대들은 생전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라 더욱 주목했을 수 있다. 북한을 제외한 어디라도 맘 편히 전 세계를 누비다가 나라마다 빗장을 거는 데다 가서는 안되는 곳이 늘어나는 모습에 많이 놀랐을 것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며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다가도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는 현실을 절감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자 국제사회의 기본틀로 확립되어 가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기에 내몰렸다. 절대 다수의 가치가 1인 또는 극소수의 지배를 위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자유는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강조했 듯이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았을 때 무제한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논제에서 출발한다. 일상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의 만끽일 수 있다. 이러한 자유가 침해 당하면 자유를 향한 용기를 내야 하고 투쟁에 나서야 한다.
최근 민주주의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은 포퓰리즘과 맹목적 지지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 민주국가들의 경우 독재 정권 전복이나 민주주의를 향한 시위를 통한 투쟁이라는 국면에센 벗어나 있지만, 득표가 아닌 매표를 위한 정치권의 선전·선동과 이에 부응한 지지층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격하고 집요한 파괴적 행태를 일삼고 있다.
자유 민주주의를 누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상황이 만연하기 전에 미리 나서 예방하거나 막아버리는 것이 현명하다. 지금 보다 더 나은 체제를 구축하고 국민이 필요로 하는 정책을 생산하려는 국회의 역할 수행과 함께 국민 다수의 호응과 집단지혜가 요구된다. 정치인들은 정치의 전당인 국회가 누리기만 한다고 비난받는 특권을 제한하면서 일하는 현장으로의 변화를 실천해야 한다. 국민들도 온라인(SNS)을 통해서라도 이렇게 하도록 구속하면서 변화시켜야 한다.
특히 인종주의, 근본주의, 제국주의, 팽창주의 등을 경계하는 한편 우리 내부의 민족주의, 종북주의, 사대주의, 폐쇄주의 등을 척결해 역사와 사회 발전의 퇴행을 막아야 한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은 분명히 고통스럽고 긴 여정이지만 올해에도 일관되게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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