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자 이래경 사퇴에도 여야 비난 봇물
[시민일보 = 여영준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68회 현충일을 하루 앞두고 외부에서 영입한 혁신위원장이 논란 끝에 9시간여 만에 물러나자 이재명의 ‘현충일 자충수’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재명 대표는 5일 오전 9시30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새 혁신기구 위원장으로 이래경 사단법인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을 임명했다. 이 대표가 전날 밤 최고위원들에게 직접 추천한 인사다. 이 대표는 “혁신위의 명칭, 역할 등은 모두 혁신기구에 전적으로 맡기겠다”라면서 “우리 지도부는 혁신기구가 마련한 혁신안을 존중하고 전폭적으로 수용하겠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전권을 부여하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하지만 이래경씨는 민주당 쇄신을 이끌 혁신위원장에 낙점됐다가 불과 9시간여 만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해당 인사가 “천안함은 자폭을 미 패권 세력이 (북한의 폭침으로) 조작한 것” “코로나19 진원지가 미국” 등 음모론을 주장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특히 그가 ‘이재명 지키기 대책위’ 제안자로 이 대표 강성 지지자란 점도 논란이 됐다. 비명계에선 “이재명식 혁신의 민낯”이란 반발이 나왔다.
실제로 그는 지난 2월 10일 페이스북에 미국의 중국 정찰풍선 격추를 언급하면서 “자폭된 천안함 사건을 조작해 남북관계를 파탄 낸 미 패권 세력”이라고 쓴 게 드러나 논란이 됐다.
미국이 천안함 사건을 조작했다는 음모론과 같은 맥락의 주장이다.
이에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 등 천암함 유족·생존장병은 즉각 반발했다. 최 전 함장은 이 대표에게 “현충일 선물 잘 받았다. 오늘까지 해촉 등 조치 연락이 없으면 현충일 행사장에서 유족, 생존 장병들이 찾아뵙겠다”며 사과도 요구했다.
또 2020년 3월엔 중국 관영매체 CGTN을 인용해 “코로나19의 진원지가 미국임을 가리키는 정황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반미(反美)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일본 도쿄 한·일 정상회담 다음 날인 3월 17일 “우방들에 이용만 당하고 토사구팽당하는 윤석열, 이제 국민이 그를 팽(烹)할 차례”라고도 썼다. 2월 16일 “오늘 시점에 다시 되새기는 명언”이라며 “알면 알수록 이재명은 박식하고 윤석열은 무식하며, 까면 깔수록 이재명은 깨끗하고 윤석열은 더럽다”는 글이 적힌 사진도 게시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민주당 내에서도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4선 홍영표 의원은 임명 2시간 만에 “과격한 언행과 음모론으로 논란 됐던 인물로 혁신위원장에 부적절하다”며 이 이사장 내정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김철민 의원은 “누가 추천한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혁신위원장 인선이 진행됐고, 인사 참사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고 비판했다. 이동학 전 최고위원은 “혁신의 첫걸음부터 삐끗한 건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특히 비명계는 이 이사장이 2019년 경기지사였던 이 대표가 대법원 선거법 위반 판결을 앞두고 있을 때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 구성’ 공동 제안자였던 사실에 반발했다. 5선 중진인 이상민 의원은 “당내 논의도, 검증도 전혀 안 됐고 오히려 이재명 대표 쪽에 기울어 있는 분이라니 더 기대할 것도 없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 대표의 사과를 요구한 최원일 전 함장을 겨냥한 막말을 쏟아내 2차 논란까지 불렀다. “부하들을 다 죽이고 무슨 낯짝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냐”며 “어이가 없다. 원래 함장은 배에서 내리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다. 최 전 함장은 이에 “고소하겠다”고 했다.
이처럼 논란이 계속 커지자 결국 그는 5일 오후 6시55분 “사인이 지닌 판단과 의견이 마녀사냥식 정쟁의 대상이 된 게 매우 유감스럽다”고 남 탓을 하며 사의를 표명했다.
이에 국민의힘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대한민국의 근간을 위협했던 이석기에 대한 석방 요구부터 '천안함 자폭' 운운하며 망언을 내뱉었던 이래경 이사장이 자진 사의를 표했다"며 "성난 민심에 뒤늦게 직을 사양했지만, 그런다고 해서 이미 상처받은 천안함 용사들에게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유 수석대변인은 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의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 관련 발언을 문제 삼았다.
그는 "성난 국민들의 사퇴 요구 앞에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더 심한 막말을 늘어놓았다"며 "최 전 함장의 말대로 현충일 전날,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영웅들을 기리지는 못할망정 또다시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들을 연이어 자행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준석 전 대표도 페이스북에 "이래경이라는 분은 물러갔지만, 권칠승 의원의 발언은 쉽게 주워 담기 어려울 것"이라며 "국회의원은 쉽게 물러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는 "이 상황에서 민주당이 조금이라도 위기의식이 있다면 권 의원을 수석대변인 자리에서 면직하고 그 직위를 천안함 장병에 대한 폄훼가 지속될 때 용기 있게 지적한 김병기 의원에게 제안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했다.
안병길 의원도 "천안함 음모론을 퍼뜨린 자가 민주당 혁신위원장으로 추대된 것으로 모자라 이번엔 수석대변인이라는 자가 '천안함 함장이 부하들을 다 죽였다'라는 망발을 했다"며 "모두 현충일을 하루 앞두고 생긴 일"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하기 전에 '수석대변인 해임', '당대표 사죄'부터 선행하는 것이 최소한의 염치이자 도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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