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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운영의 역사가 70여년을 지나고 있지만 해봐야 욕 먹을 게 뻔한 방식을 여전히 고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도무지 변화를 외면한 채 시도조차 하지 않기도 한다. 가장 전형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본회의 중심으로 활동하며 국민에게 보여주기식 국회 운영에 매달리는 모습이다. 본회의에 집중하다 보니 온갖 격식과 형식이 판을 친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정당 대표 연설과 대정부 질문인데, 외국에는 그 자체가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형식으로 진행할 뿐이다.
우리 국회는 본회의가 열리면 가장 먼저 정당 대표 연설을 한다. 하루 동안 1개 정당의 대표가 하는 본회의장 연설로 채워지며 넘어가 버린다. 정당 대표들 연설 일정으로 1째주를 지나고 나면 대정부 질문이 이어진다. 막상 시작되면 의원들이 목소리를 높여 질타하는 경우가 주를 이루고, 총리와 장관들은 수세적인 입장에서 최소한의 답변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그야말로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의원의 모두·마무리 발언, 총리·장관이 걸어 나와 인사하기 등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회의장에는 왼쪽 정부측 자리에 총리와 장관들이 잔뜩 앉아 있고, 순서가 된 해당 의원은 의장 앞에 놓여진 연단에 서서 질문한다. 막상 질문을 하면 답변 보다 훨씬 더 많고 길며 잡다해서 지루할 지경이다. 이렇게 의원들은 길게 질문해서 본인이 언론의 집중을 받으려 애쓰는 반면 총리와 장관들은 가급적 짧게 답변하며 대충 형식상 뭉뚱그린 내용으로 넘어가려 애쓰기 일쑤다.
“총리(아니면 장관·위원장), 국정이 엉망입니다. 민생은 도탄에 빠져 있고 나라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의원님이 지적하신 말씀 잘 들었습니다. 향후 여러 의견들을 수렴하고 참작하면서 다각도로 점검해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해 차질없이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원은 반응 역시 대체로 총리와 장관들의 답변에 대해 반박한다.
"총리(장관)는 그걸 답변이라고 합니까. 도대체 하는 일이 뭐요.“ (그러다가 수 틀리면 말을 끊고는) ”가만히 있어요."
질의답변이 오가는 동안 많게는 수백명의 의원과 총리·장관들이 가만히 앉아서 대기하며 보내야 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하루 내내 대정부 질문이 진행되는 동안 12명 정도가 나서 5시간30분 이상 이어지는데, 정치, 외교·통일·안보, 경제, 교육·사회·문화 분야로 나눠 되풀이 된다. 하지만 언론에서 다루는 정치 현안에 집중하다 보니 여당·정부와 야당이 뻔한 주제를 놓고 격론을 벌인다. 그러다보니 정쟁 국회, 파행 국회로 변질되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 예사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본회의장에는 국회의장(더러는 부의장)과 질의하는 의원, 답변하는 총리·장관을 제외하곤 의원들이래야 겨우 수십 명 정도가 들락거리며 자리를 채우게 된다. 하루 종일 진행되다 보니 국민들이 막상 TV로 보면 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잠자거나 졸음과 하품을 쫓으며 지루해하거나 휴대폰을 들여다 보거나 주변 의원들과 잡담을 나누는 모습이 보일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부처별 책임자들은 한창 일해야 할 시간에 국회에 붙잡혀 있는 것처럼 비쳐진다. 이러니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다.
주요 선진국들의 경우를 살펴 보면 우리 국회와 전혀 다름을 쉽게 알 수 있다. 민주주의 정치의 발상지인 영국 의회에서는 정당 대표 연설이 아예 없다. 대총리질문(PMQ)조차 1주일에 1번 여는 정도다. 하원의원 650명이 모여들지만, 실내 경기장 크기도 되지 않는 좁은 본회의장에 탁자도 없고 좌석 구분 손잡이도 없는 길다란 의자에 지정석도 명패도 없이 어깨를 맞대고 촘촘하게 앉아야 한다. 그마저도 늦게 오면 뒤에 서 있어야 한다. 1주일에 딱 1차례만 총리를 상대로 수십 명의 의원이 질문에 나서는데, 대략 1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의장이 장내를 정리하고 나면 의원이 의장에게 발언권을 얻어 자리에서 일어나 질문하게 되면 질문 1건당 30초대를 사용하는 반면 (장관도 포함해서) 총리의 답변 시간은 그보다 더 길다. 그 내용상 정책 질의와 답변이 오간다. 우리의 이웃 나라인 일본 역시 영국과 비슷하다.
우리 국회의 본회의장 모습을 바꿀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의원들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동안의 소모적인 본회의를 뭐하러 여는가. 보여주기식 국회는 더 이상 효용성도 없다. 열어 봐야 국민의 비난만 자초하게 되어 있는 만큼 최소화 하면 된다. 본회의는 의원들이 상임위에서 심도 깊게 논의하고 의결한 사항을 회기 마지막날, 더러는 그 하루 전날을 포함해 이틀 정도 열어 의례적인 통과만 하면 된다. 굳이 대정부질문을 하려면 영국·일본의 경우를 참작하면 될 것이다.
그 대안도 있다. 상임위원회 중심으로 국회를 운영하면 된다. 사실 국회는 본회의 보다 상임위원회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중요하다. 차분하고 내실있게 법률과 예산에 관해 심의하고 논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상임위 중심 운영제 역시 소모적인 낭비가 심하다. 그래서 소위원제 중심 운영제가 필요하다. 많은 상임위의 경우가 그러하듯 20~30명 정도가 모여서 여는 느슨한 회의 보다 소수의 정책 분야별로 나눈 소위원회를 통해 정책 중심의 국회 운영을 지향하는 것이 순리이자 합당한 것이다.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정치적 보여주기에서 벗어나 제대로 정책 중심으로 운영할 수 있다. 정부 측 인사도 필요한 분야의 해당 담당자 위주로 참석하도록 해서 알찬 국회를 운영하도록 노력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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