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병, 할말은 한다] 국민 모두가 정치 전문가인 나라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3-01-10 13:21:12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현경병 전 국회의원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희망에 가득 차야 할 기대감과 달리 국내외적으로 힘들고 어두운 소식들이 주로 다루어지고 있어 마음이 무거운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 현실이 뉴스의 대부분을 장식하고 있지만, 희망과 기대감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이 국민을 실망과 분노로 이끌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객관적인 인식과 비교에 기반에 접근해 보면 마냥 절망의 길로 접어드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인에 대해 흔히 하는 말로 정말 모르는 것이 몇 가지 있다고 한다. 한국이 얼마나 잘사는지, 한국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 속에 살고 있는지, 대놓고 무시하지만 일본이 얼마나 막강한지, 같은 민족인데도 북한주민들이 얼마나 인권과 고난을 겪고 있는지 너무 모른다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여기에 더해 한국 정치가 이만하면 괜찮은 편에 속한다는 사실도 너무 모른다고 본다.


현재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정치 수준을 놓고 주요 선진 민주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경우 선거에 지면 불복하는 문화가 상당히 강하다. 패배한 지지층들은 난동과 파업을 일으키며 숱한 사람들이 죽기도 한다. 가족, 친구, 이웃, 직장동료까지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함께 하지 않으려 한다. 미국에서는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면 결혼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일본은 대다수 의원은 물론이고 다수의 총리와 각료들이 세습 정치인이다. 파벌 정치에 막후 밀실 정치가 성행한다. 국가 정책은 이들 정치인들의 나태와 무기력 속에 거의 변화없이 이어지며 잃어버린 10년을 지나 어느새 잃어버린 40년째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우리 국민들이 전체 인구로 봤을 때 약 5200만명 정도 되는데, 하나같이 정치 전문가로 행세하며 거침없이 자기 주장을 말한다는 점이다. 단체장을 선거로 왜 뽑냐며 과거처럼 중앙에서 임명하자고 쉽게 말해 버린다. 시·도 광역의원, 특히 시·군·구 기초의원은 필요 없고 세금이 아까우니 아예 없애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기 일쑤다. 선거구제, 사전투표, 전자투표 등을 놓고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내놓는다. 특히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이 패배하면 본인의 입장에만 매달린 채 더러는 그 선거를 두고 부정선거라며 논란을 일으키는 발언을 마구 해댄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정치 학자나 선거 전문가조차 제대로 규명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수두룩하다. 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 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반이라는 정치의 기본 전제조차 무시하는 측면이 다분하다. 서로 장단점이 팽팽한 정치 의제를 두고서는 오래 동안 충분하고 치열한 논의를 거쳐 숙성 과정을 거친 후 결론을 내려야 맞는데 극히 주관적이고 단발적이다.

 

인터넷과 온라인 SNS를 통해 떠도는 가짜뉴스들을 쏟아내는 가운데 부정선거를 맹신하는 소수를 양산하면서 사회적 담론으로까지 발전시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정치 제도와 시스템에 관해서는 말 보다 가급적이면 충분한 생각을 해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선진 민주국가일수록 한 번 시행한 제도는 특별한 상황이나 변화가 없는 한 수십, 수백년 동안 그대로 유지하는 편이다. 정치인과 정당에 대해서는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일정하게 비판적이지만, 선거를 통해 얼마든지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가 있고, 더러는 국민적 심판을 통해 정치의 강력한 주역으로 만들어주거나 완전히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다.


이젠 우리 국민들도 정치 전문가로 행세하기 보다 인내심을 발휘하며 꾸준하게 관전하는 가운데 전문 지식 수준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지식·정보를 갖춘 후에 차분하게 의사를 밝히는 게 어떨까 싶다.


다만 국민이 이렇게 다급하지 않게 느긋한 자세를 취해도 될 정치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전제도 중요하다. 가만히 지켜보기에는 나라와 미래가 걱정되기 때문에 참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누구보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선도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정치 개혁, 국회 혁신, 정당 쇄신이라는 용어가 난무하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은 입법 발의를 내놓으며 실적이라고 자랑하는 방식도 아니다. 하나라도 잘못된 자신의 기득권이나 특권부터 내려놓는 한편 국민적 관심이 높은 분야에 대한 국정 과제부터 제시하고 법·제도로 만들어가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