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병, 할말은 한다] 또 다시 등장한 중대선거구제 논의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2-12-14 13: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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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병 전 국회의원



얼마 전에 지인들과 자리하다가 국회의원 선거구를 중대선거구로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말하는 것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때마침 총선을 앞두고 일부 정당과 정치인들이 이 제도로의 개편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 일부에서도 동조하는 느낌이 물씬 들었다. 과거 1973~87년 사이 군사 정권에서 안정 과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이 제도를 시행한 바 있다. 현재 비례대표 국회의원과 지방선거 시·군·구 기초의원 선거 때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도 정치인들의 계산법이 작동하는 현실을 무시할 순 없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정당에 유리한 정치환경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제도화를 시도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제 총선이 1년4개월 정도 밖에 채 남지 않았다. 이번에도 선거를 앞두자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명분은 좋다. 지역감정이 팽배한 현실을 초래한 소선구제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당을 비롯한 소수 정당들은 선거구별로 득표 1위자만 당선되는 판도를 고쳐 지역구 의원들을 배출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 얼핏 들으면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선거구제 개편 방식인 것 같지만 궤변일 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역감정은 중대선거구제로 바꿔도 변할 가능성이 없다. 선거구를 소선거구제 때보다 2~5배 정도 넓혀 봤자 호남에서는 여러 명이 공찬 받아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만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기껏해야 민주당 성향 무소속 후보가 선출될 것이고, 당선 이후에는 곧바로 민주당에 입당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영남에서도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소속 후보들이 대부분 당선되고, 일부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당선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다. 중진 정치인들이 이 제도를 누구보다 환영해 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정당이 당선 가능성을 가장 최우선시 하는 현실에서 자신의 공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데다 정당 내 경선과 국회의원선거 본선에서는 압도적으로 유리한 정치적 입지를 활용해 당선 안정권에 안착한 채 어렵지 않게 당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들은 더욱 유리하다.


또한 총선을 전후해서 유력 정치인들이 자신들 중심의 정치 세력을 만들거나 각종 파벌들이 주도하는 정치가 성행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군소 정당들이 난립하면 정치적 분열과 혼란이 더욱 격화될 수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방식의 가장 큰 폐해가 정치 신인들의 국회 진출 기회를 훨씬 더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후보별로 훨씬 더 넓어진 선거구에서 뛰어야 하는 현실에서 그만큼 더 많은 선거자금을 들여 조직을 가동하고 홍보해야 하는 탓에 당선 가능성이 엄청나게 낮아지는 것이다.


물론 소선거구제 방식은 선거권자가 출마 후보자 중 1명에게만 투표한 후 가장 많은 득표를 한 후보자가 당선되는 다수대표제라서 다수 양당에 유리하고 지지율에 비해 훨씬 많은 의석을 차지할 수 있는 데다 소수당의 경우 국회 진출에서 불리한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구제를 놓고 볼 때 우리가 정말 인식해야 할 중요한 정치적 기준이자 가치가 있다. 바로 국민주권주의에 입각해 민주주의 원칙을 충실히 구현하려면 소선거구제를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유권자가 투표 절차와 방식에서 간단하고 편리해 쉽게 투표할 수 있고 선거구가 작아 후보자들을 파악하기 쉬우며 투·개표 방법 또한 단순해 선거관리가 편하고 비용이 적게 든다.


이런 까닭에 주요 정치 선진국들 가운데 중대선거구제를 시행하는 경우는 없다. 소선거구제가 아닌 나라는 거의 없는 것이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철저하게 소선거구제를 시행하고 있다. 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는 일부 국가에서 도입하더라도 소선거구제만은 배제하고 있다. 일본에서 선거구별로 2~5명을 선출하자 일당 지배력을 구축하고 독주하는 자유민주당(자민당)이 본인 정당에만 유리한 제도라 하여 강력한 비판에 시달리자 결국 1995년에 중대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바꾼 이후에는 일정한 인구 규모를 가진 정치 선진국에서는 없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왜 소선거구제를 하고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어떠한 정치적 환경에서도 지켜야 할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선거구제가 국민이 주권자로서 그 권력을 위임할 공직후보자를 선출하는 민주 선거 과정에서 그 원칙에 가장 충실하게 대표성 있는 정치인을 선출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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