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놈이 자신을 수사할 경찰 임명한다고?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5-12-23 14: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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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그동안 줄곧 ‘통일교 게이트’ 특검을 거부해왔던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의 특검 요구를 전격 수용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23일 “통일교 특검은 확정적이고 즉시 추진할 것이다. 의혹이 중대한데 시간을 끌면 진실은 흐려지고 증거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속도가 곧 정의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마디로 시간을 ‘질질’ 끌지 않고 즉시 통일교 특검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그의 말은 진심일까?


아니다. 백승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통일교) 특검법을 발의하더라도 (야당과)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라며 “연내에 법안을 처리하기는 물리적으로 어렵다”라고 했다.


대체 무슨 협의가 필요하다는 것일까?


김병기 원내대표는 “성역은 허용하지 않는다. 여야도, 지위도 예외가 될 수 없다”라고 했다.


그게 진심이라면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이 합의한 ‘제3자 특검추천 방식’을 수용하고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처리하면 되는 일이다. 굳이 연내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이번 주 내에도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다.


모든 야당은 통일교 특검 후보추천권을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이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혁신당은 물론 범여권의 한 축인 조국혁신당도 같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힘도 동의했다.


그런데 김병기 원내대표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실제로 김 원내대표는 전날 “특검은 특검법에 따라서 하는 것”이라며 “법에서 벗어나는 일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현행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특검법)에 따르면, 특검 후보는 법무부 차관, 법원행정처 차장, 대한변호사협회장, 국회가 추천한 위원들로 구성된 추천위원회가 2명을 추천하게 돼 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도 특검 후보권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특검 수사 대상인 민주당이 특검 추천권을 가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민주당이 후보추천권을 행사하면 이재명 대통령이 그를 특검으로 임명할 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연히 특검의 칼날은 야당만을 향하게 될 것이고, 이재명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건드릴 수 없는 성역으로 남게 될 것이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은 윤영호 녹취록에 나온 것처럼 한학자 총재를 만나기 위해 통일교와 접촉한 적 있는지, 그래서 한학자 총재를 만나서 경배를 올린 적 있는지 밝혀야 하는 데 민주당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 특검이라면 그게 가능하겠는가.


불가능하다. 김병기 원내대표가 민주당 주도로 만든 법대로 하자는 것은 그런 노림수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이 합의한 대로 통일교 특검을 외부에서 추천하면, 여야 성역 없이 공정한 수사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정진상 등 이재명 대통령 측근들의 연루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 그게 두려운 거다.


여론이 통일교 특검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마당에 마냥 외면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특검 수용’으로 방향을 선회했지만, 진짜로 하고 싶지 않다는 속내를 그런 식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즉, 통일교 특검을 하기는 하는데 연내에 법안을 처리하기는 물리적으로 어렵다며 시간을 ‘질질’ 끌다가, 특검 후보 추천은 현행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특검법)’에 따라 민주당도 후보 추천을 할 수 있게 하고, 대통령이 그를 임명하게 해 이른바 ‘맹탕 특검’을 만들겠다는 속셈이다.


그래선 안 된다.


정교유착의 전모를 밝히고 거기에 연루된 여야 인사들 모두 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게 맞다. 특검은 그러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권이 아닌 제3자가 특검 추천권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특히 증거인멸 등의 행위가 벌어지기 전에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신속하게 처리하는 게 맞다. 이걸 거부하면서 추천권을 민주당도 행사하겠다는 건 도둑놈이 자신을 수사할 경찰을 임명하겠다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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