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주년 4.19혁명 기념일에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2-04-14 15: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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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방보훈청 총무과 단체협력팀 송경미

해마다 어김없이 4월19일은 돌아오고 그해의 4월19일도 어김없이 돌아왔던 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에게 4월 19일은 4.19 혁명 기념일로 돌아온다.

1960년 4월19일은 학생과 시민이 중심이 돼 민주주의를 지켜낸 4.19 혁명이 일어난 날이다

4.19 혁명은 민(民)이 중심이 돼 집권 세력을 끌어내는 최초의 역사적인 사건으로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집권 여당은 자유당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오래 동안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마음대로 바꾸며 이승만 정부는 장기 집권을 유지하게 됐다.

계속되는 언론에 대한 탄압과 테러, 날조 공작행위를 마주한 당시 시민들은 이승만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게 되었고 정권에 대한 불만이 점점 높아지게 된다.

그사이 1960년 3월15일 제3대 정부통령 선거를 맞게 됐으며, 자유당은 대통령 후보로 나온 이승만과 부통령 후보로 나온 이기붕을 당선 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미 여당에서 마음을 돌렸고 여론은 민주당으로 기울게 됐다.

자유당은 이런 당시 사회 분위기를 파악하고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온갖 불법적인 수단을 총동원해 투표함에 미리 표를 집어 넣어서 유권자수가 110명인 지역구에서 자유당 부통령 후보 이기붕의 찬성표가 150표가 나오기도 했고 3명, 6명씩 짝지어서 한꺼번에 선거를 진행하게 하며 투표장 입구에서 고무신을 나눠주는 등 황당한 불법 수단으로 선거에서 승리하려고 했다.

이 모습을 보다 못한 학생들과 시민들은 ‘민주주의는 죽었다, 부정선거 다시 하라 ’라고 외치며 광장으로 나오게 된다.

그러던 4월11일 어린 한 학생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르게 되고 이 학생의 이름은 바로 김주열. 눈에 최루탄을 맞고 숨지게 된 김주열 학생의 사진이 신문에 나가게 되고 이 사건이 4.19 혁명의 불씨가 돼 전국적으로 번져 나가게 된다.

어른 아이 상관없이 모두 광장으로 나가고 제자들의 희생을 본 대학 교수들은 시국 선언을 발표했고, 전 국민이 힘을 모으게 되면서 결국 4월26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대통령에서 물러났다.

이처럼 4.19 혁명은 독재 정권에 저항하고 민주주의 사회를 지킨 민주주의 운동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4.19의 노래는 ‘눈부신 젊은 혼이 목숨을 바쳐 독재를 물리치고 나라건졌네~’로 시작한다.

기성 세대의 잘못을 바로 세우기 위해 젊은 혼 학생들이 하나 뿐인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고자 했던 것은 자유 민주 정의임을 항상 가슴에 품고 우리가 누리는 자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피어난 꽃임을 잊지 않는 4월이 되기를 기원하며, 4.19혁명 기념일을 맞아 우리 모두가 4.19 정신을 이어받기를 바란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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