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의 그 가난했던 흙냄새가 그립습니다. 그땐 어디서나 흙냄새가 났습니다. 특히 저의 유년 시절인 1957년도 경에는 답십리에서 그리멀지 않은 청계천변 뚝방인 왕십리(마장동) 호박밭과 채소밭에서 풍기는 청국장 냄새같은 인분 냄새가 장마철 맹꽁이 울음소리와 함께 저의 청각과 후각을 많이도 자극했습니다.
동네에 우물이 몇 개 있었는데 우리집은 지리적 여건이 아주좋아 우물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었죠. 아침이면 뻥뚫린 누덜누덜한 창호지 방문을 여미고 기분좋게 잠을 깨던곳.
아침이면 먹을 물을 길러 우물가에 가곤했는데, 물 심부름을 나온 친구들과 만나 물장난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물에 누가 언제 빠져 죽었다는 둥, 밑바닥엔 이무기가 산다는 둥, 여러가지 이야기를 신비하게 나누며 어두운 우물속을 내려다 보곤 했습니다. 우물속에 반영된 그림자에 “야호”하고 소릴 지르면 이끼 냄새가 확 스치며 찬 기운이 돌곤 했습니다.
학교 앞에는 물방게를 이용해서 우리들을 유혹하던 뽑기 아저씨, 병아리를 가지고 나온 시골 할아버지.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병아리를 구경하던 이유는 할아버지한테 살 의사가 있음을 넌지시 비추는 행동이었죠. 물론 주머니속에는 10환(옛날 화폐 단위)도 없었답니다.
그 시절엔 돌멩이만 있어도 하루종일 즐겁게 놀았고, 그것도 없으면 작대기로 하는 자치기 놀이, 뼘재서 금만 긋는 땅따먹기를 하여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었고 배가 고프고 해가 져서 어둑어둑 해질때까지 친구들과 놀았죠.
그때 그 기억들을 사진으로 담아 놓았다면 오늘 눈가에 웃음을 띠고 바라볼수 있을텐데 말이죠.
어쩌면, 먼 훗날 지금처럼 우리가 PC앞에 앉아 자판이나 마우스로 클릭하는 모습이, 그리운 기억들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의 각박한 인심이 야박한 세상살이를 다 정리하고 순수하고 순수했던 그 무공해 시절로 다시 가고 싶은 건 우리 모두의 바램이겠죠? 아닙니까? 맞을겁니다! 제 생각일뿐인 줄은 모르지만서요. 아마 지금 다가온 이 계절의 여왕 5월은 그 시절을 죄다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 지금 그 때 그 모습의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해질녁에 골목 저 끝에 서서 목청껏 불러주시던 어머니의 그 음성. 그때처럼 제 이름이 불리워진지는 오래전인것 같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시지만 70이 넘으신 현재의 어머니의 모습이 아닌 젊디 젊으시던 그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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