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고고의 울음을 터뜨리며 인간세상에 나올 때일 것이요, 둘째는 남자와 여자가 짝을 지어 새로운 잉태준비를 위해 남과 남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경사를 말함이요, 셋째는 자연과 함께 더불어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다음 세대를 위해 인간세상을 은퇴하는 죽음이라는 이별식을 꼽을 수 있겠다.
이 세가지 모두 우리 인간에게는 누구나 한번은 꼭 겪어야 할 소중한 것들이다. 우리네 선조들은 이를 위해 경사 때는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조사 때에는 슬픔을 함께 나누어 왔다. 경사 때에는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차려놓고 주인이 잔치를 벌인다. 모든 사람들을 청하여 먹으며 즐긴다.
조사때도 마찬가지다. 다른 것이 있다면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고인의 생전 행적중 좋은 것만 이야기하며 명복을 빈다. 상주의 슬픈 곡소리에 문상객의 마음도 슬퍼지고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도 많이 변했다. 문명의 발달이 사람의 마음까지도 변화시켜 버렸다.
결혼식장에선 혼주와 얼굴맞대기가 가장 큰 목적이 된 것 같다. 신랑신부의 얼굴도 잘 모른다. 그들도 축하객이 누구이든 상관없다. 빨리 결혼식이 끝났으면 하는 바램뿐일 것이다. 상가는 어떤가? 고인이 보았을 때 기도 차지 않을 일이 많다. 언제부터인가 부조금이 폭등했다. 주가의 상승보다 더 큰 폭으로. 환절기가 되면 경·조사 안내장이 쇄도한다. 그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예전에는 얼굴을 잘 몰라도 한 직장에 근무하면 조금의 성의라도 표시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힘들게 되었다. 부조를 할 때 내 마음의 솔직한 느낌을 읽을 수 있다. “이래선 안된다. 공인된 행동을 해야지”하며 내 마음 속에서 느낌들끼리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어쨌든 혼주에게, 상주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서 요사이는 축, 결혼(화혼)에다 “행복하게 사세요”라고, 그리고 부의 때는 “명복을 빕니다”라고 부조금 겉봉투에 마음을 표현하는 글자 하나를 더 써넣어 나의 정성을 담기로 했다. 그래야만 나의 마음이 좀 더 편안할 것 같아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지 나는 직접 부조를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어떻게 할까?
이제까지 30년 이상 부조를 해왔는데, 그리고 체면과 위신을 생각하면....벌써부터 마음의 갈등이 생긴다. 접어두자! 21세기에는 또 다른 변화가 있겠지. 예전과 같이 진정한 마음이 담긴 부조를 주고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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