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 말은 ‘개성 시대’라는 지금 시기의 실체를 꿰뚫어 보는 말일지도 모른다. 남과는 다른, 나만의 독특한 개성과 특징을 표현한다는 젊은이들의 옷차림과 몸치장이 사실은 몇몇 업자들이 주도하는 유행의 흐름속에 갇혀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식 개성은 심하게 말하면 ‘가두리 양식장 속의 개성’일지도 모른다.
‘소비’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한 우리는 이런 틀지워 양식장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 ‘개성’이 단지 ‘남과는 다른 것을 소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아름다움’이 ‘남과는 다른 상품을 구매하는 안목’에 의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거대한 소비시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에 우리의 삶을 의탁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 보이지 않는 손의 주인공은 기성세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지 기성 세대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 젊음의 특권이며 개성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을 간혹 접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과 행동이 기성의 질서를 거부하되, 아무런 새로운 가치가 없는 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더욱이 그것이 소비사회를 움직이는 기성세대의 ‘상품 판매 전략’의 틀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라면,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정치’의 시대인 80년대를 살아온 젊은이들은 비록 투박한 옷차림에 돌멩이를 들었어도, 자신들을 규정하고 있는 기성 질서의 본질을 꿰뚫고 그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자신이 놓여 있는 처지를 자각하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한 생산적 대안을 모색한 행동이었기에, 우리는 그러한 노력들을 고통스러웠지만 아름다운 저항의 역사로 간직하고 있다.
‘문화’의 시대인 90년대와 21세기를 살아왔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펼쳐보이는 다양한 생각과 행위가 ‘이유없는 반항’이나 일과성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그러한 창조적, 지속적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기성세대가 틀지워놓은 소비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들어가고마는 찰나적 저항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생산적 질서를 위한 21세기식 해답을 우리 젊은이들은 내놓아야 할 책임이 있다.
정녕 나는 지금 이 시기에 젊은이들로부터 ‘소비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생산하는 아름다움’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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