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자유투표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2-05-20 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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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남이 만들어 놓은 높은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시위(尸位)’라는 고사성어가 쓰인다.

옛날 중국에서는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에 조상의 혈통을 이은 어린 아이를 조상의 신위(神位)에 앉혀 놓고 제사를 지냈다. 그 때 신위에 앉는 어린아이를 시동(尸童)이라고 하며, 시위란 바로 그 시동이 앉는 자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영혼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에게 접신(接神)하여 그 아이의 입을 통해 먹고 싶은 것도 먹고 마시고 싶은 것도 마시게 하는 원시적인 신앙에서 생겨난 관습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른들이 시켜서 높은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것을 가리켜 ‘시위(尸位)’라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국회의장 자리가 마치 옛날 중국의 ‘시위(尸位)’를 닮았다면 모욕일까.

그러나 사실인 것을 어쩌랴.

국회의장은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일을 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국회에서 집권당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리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시위(尸位)’에 머물던 자리를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로 바꿀 수 있는 기막힌 제안이 나왔다.

최근 이만섭 국회의장이 “자유투표에 의해 새 의장단을 선출하자”는 제안고 제안한 것은 참으로 신선하다.

사실 국회의장 선출 등 16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으로 원내 환경이 크게 바뀐 탓이다. 더구나 국회를 지방선거와 대선전략에 활용하려는 각 당의 당리당략이 겹쳐 원구성은 협상단계부터 첨예하게 대립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 의장은 “각 당이 특정후보를 내지 않고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완전 자유투표로 의장을 선출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이미 각 당이 차기 의장단 후보를 내정해놓고 있는 상태에서 이 의장이 연임을 노리고 제안한 ‘꼼수’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정국구도나 개정된 국회법 정신에 비춰 볼 때에 의장단 선출에 자유투표를 도입하자는 취지는 충분히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실제로 대통령의 당적 포기로 민주당이 집권당의 프리미엄을 내세울 명분이 약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도 아직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한 것은 아니다. 이런 상태라면 어차피 정파간 협상에 의해 새로운 관례를 만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번 국회의장은 지난 2월 개정된 국회법에 따라 당적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의원 소신에 따라 자유투표로 의장을 선출하는 것이 국회법 취지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각 당의 지방선거와 대권전략에 볼모잡힌 국회를 정상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런 점에서 “자유투표를 실시하자”는 이 의장의 제안은 국회의장을 ‘시위(尸位)’라는 위치에서 벗어나게 할 충분한 가치 있는 제안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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