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연합 관계자는 “당시의 공추련은 한국 환경운동사에서 처음으로 대중주의를 표방한 본격적인 환경운동단체였다"며 “공추련의 창립과 함께 전국 규모의 환경운동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실제로‘공해추방’이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때가 바로 공추련의 창립 이후부터였다. 공추련은 이 시기에 다른 부문운동과 연대와 협력하며 사회적인 공공선의 실현을 위해 폭넓은 활동을 벌여나가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환경연합 관계자는 “반공해운동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1980년대 후반을 지나,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개최된 유엔환경개발회의는 세계환경운동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사건이다"며 “리우회의를 기점으로 한국의 환경운동 또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고 밝혔다. 반공해운동에서 환경운동으로 변화를 시작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셈이다.
이후 공추련은 1993년 4월, 전국의 주요 8개 환경단체와 통합하여 한국 최대 환경단체에서는 ‘환경운동연합’으로 거듭나게 된다.
환경연합은 창립 이후 활동을 국내로 국한하지 않고 세계로 발을 넓혀 나갔다. 국내에서는 환경문제의 발화점인 현장성을 강조해 지역환경운동에 집중하는 동시에 지구적 차원의 환경문제에도 적극 대처하기 위해 해외 환경단체들과 국경을 넘어서 연대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지역운동의 확산과 초국적인 연대를 기치로 시민환경운동을 벌여온 환경연합은 2000년 8월 46개 지역조직과 7만3000 회원이 함께 하는 아시아 지역 최대의 환경단체로 성장하게 됐다.
환경연합 최열 사무총장은 “환경연합은 새 천년, 환경의 세기를 맞이하여 환경문제를 사회적인 이슈로 제기하고, 또한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벌여 나갈 것"이라며 “이는 감시자의 역할에서 정책의 기획과 실행까지 시민환경운동의 영역을 확대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최 총장은 또 “앞으로도 환경연합은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녹색의 길에서 시민과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이영란기자 joy@simin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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