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욕심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2-10-18 17: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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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미네소타대학의 미첼 찬리(Mitchell V. Charnely) 교수는 뉴스에는 다섯가지의 특질이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다섯가지의 뉴스 특질이란 정확성, 균형성, 객관성, 간결성, 명료성, 최근성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특질은 아마도 ‘정확성’일 것이다.

한때 우리나라에 ‘정부의 말은 못 믿어도 신문의 기사는 믿을 수 있다’는 소리가 있었다. 물론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정치인들이 너무나 쉽게 말 바꾸기를 시도하는 바람에 탄생한 소리였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그만큼 신문기사가 정확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신문기사의 정확성은 생명과도 같다. 실제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일반 대중은 TV 보도나 라디오와 같은 전파미디어는 물론, 같은 인쇄미디어인 잡지보다도 더 신문기사를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스포츠’니 ‘스포츠 ××’니 하는 소위 황색신문에 가까운 신문들이 판을 치는 데다가 재벌언론들의 무분별한 독자확보경쟁으로 한탕주의식 기사가 남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확한 기사보다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기사, 혹은 한방에 뜰(?) 수 있는 기사들이 좀더 비중있게 다뤄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편집국에서도 예외없이 자극적인 기사를 찾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다보니 각종 ‘설(說)’들이 버젓이 신문지면의 상단을 차지하게 된다.

몇년전 각 신문과 방송에서 아버지의 제보로 어린 소녀 유괴사건이 대서특필됐다가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서 잠잠해진 일을 아마 독자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유괴된 어린이가 아버지에게 “살려 달라”며 전화를 걸어 왔다는 소식을 접한 독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이 어린 소녀의 생사를 염려하면서 눈시울을 붉혔었다. 당시 필자도 얼마나 가슴조리며 이 어린 소녀의 생사를 염려했던가.

그러나 그 모든 기사는 거짓이었다. 어린 소녀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 일이 없었다. 오히려 어린 소녀는 어머니와 함께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숨어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란 사람이 가출한 아내와 딸을 찾기 위해 유괴된 딸이 전화를 걸어왔다는 연극을 한 것이 끝내 들통났다. 그로 인해 어린 소녀는 남은 인생을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됐다. 이것이 누구의 책임인가.

만일 당시 기자들 가운데 어느 한사람만이라도 사실 여부를 확인했더라면 이처럼 어이없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특종 욕심에 사실확인 없이 제보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 쓴 한 기자의 무분별한 행위는 결국 다른 기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거짓이 반복되는 기사가 소위 ‘속보(續報)’라는 이름으로 연일 신문지면을 채우는 일을 초래했던 것이다.

지금 대선을 앞두고 각종 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조선-동아-중앙 할 것 없이 이런 설들이 신문지면에서 중요한 자리에 배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신문의 생명이라고 하는 ‘정확성’은 이미 빛을 잃은지 오래다. 하지만 우리만큼은 좀더 진실에 접근하는 기사를 쓰고 싶다.

나는 편집국의 수장으로서 오늘도 80여명의 기자들에게 ‘특종’보다 ‘정확’을 강조한다. 특종욕심을 버린 나는 기자의 수장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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