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治人 無治法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2-10-24 18: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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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ILINK:1} 다스리는 사람이 있을 뿐, 다스리는 법은 없다는 말로 유치인 무치법(有治人 無治法)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즉 세상을 옳게 다스리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을 뿐, 옳게 다스리는 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고사성어는 ‘순자(荀子)’의 군도편(君道篇)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이 잘 다스려지는 것은 정치를 하는 사람의 착한 마음씨와 올바른 지혜와 끊임없는 노력에 의한 것으로 사람의 행동을 제한하는 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즉 사람에 의해 법이 통용되는 것이지 법에 의해 사람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중용 20장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애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그 때에 공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문왕과 무왕의 어진 정치가 책에 다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있으면 그 정치가 행해지지만, 그 사람이 없으면 그 정치는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치를 하는 것은 사람에 있고, 사람을 택하는 것은 임금에 있습니다.”

또 진시황은 이사(李斯)의 법률만능주의에 의해 그가 죽는 그 날로 천하가 뒤흔들리고 말았지만, 한패공은 약법삼장의 정신으로 위대한 한문화를 대변하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그 자손들이 수백년에 걸쳐 왕업을 계승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남의 나라의 자랑스러운 법조문을 빌어다가 아무리 민주적인 좋은 헌법을 만들어도 주권을 행사하는 국민들이 그 법정신을 살릴만한 애국심과 판단력이 없는 한, 부질없는 혼란만 따를 뿐이다.

물론 국민들의 지도자인 정치인들 역시 그런 법정신을 따를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 또한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좋은 법을 만들기에 앞서 좋은 인간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지금 정치인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모두가 좋은 법을 만들겠다고 아우성이다. 경제를 살리는 좋은 법, 서민들의 주름살을 펴게하는 좋은 법, 남북이 함께 잘사는 평화적인 좋은 법, 복지가 향상되고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는 좋은 법, 실업자가 일자리를 찾게 되는 좋은 법들이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는 물론이고 민주당 노무현 후보나 국민통합 21의 정몽준 의원의 입을 통해서도 ‘술술’ 흘러 나온다.

마치 그들의 공약을 듣고 있노라면 우리나라가 그동안 법이 없어서 못사는 나라가 됐던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법이 좋아도 그 법을 지켜야할 정치인들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법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우리는 오는 12월 대선에서 누군가 반드시 한 사람을 선택해야만 한다. 법이 좋아야 하겠지만 그보다 우선 우리는 그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이기를 바랄 뿐이다.

유치인 무치법(有治人 無治法)이라는 고사성어가 새삼 다가오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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