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좌우이언타(顧左右而言他)’는 난처한 입장에서 솔직히 시인해야할 일을 시인하지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로 얼버무리는 것을 말한다. 이는 맹자의 양혜왕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날 맹자가 제선왕(齊宣王)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왕의 신하 가운데 어떤 사람이 자신의 처자식을 친구에게 맡기고 초나라에 일을 보러 갔는데 돌아와보니 그동안 친구가 처자식을 돌봐주지 않아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왕께서는 그런 친구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친구를 믿고 처자식을 맡겼는데 그들을 외면하고 굶게 만든 사람이라면 당장 절교를 해야 합니다. 그는 친구를 할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버려야 합니다.”
그러자 맹자는 이번에 이렇게 물었다.
“사사(士師, 오늘날 법무장관)가 그 부하를 제대로 거느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면 당장 파면시킬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왕은 난처한 듯 좌우를 둘러보면서 엉뚱한 이야기로 현장을 얼버무리려 했다.
그래서 나온 고사성어가 바로 ‘고좌우이언타(顧左右而言他)’다.
엊그제 본보를 창간한 것 같은 데 벌써 8주년이다. 일간지로 전환한 지도 1년째라니 세월은 참으로 빠르다.
이 즈음에 우리는 스스로를 돌이켜 본다. 맹자가 제선왕 앞에서 했던 것처럼 우리가 권력을 가진자에게 얼마나 바른 말을 해왔을까. 혹시 제선왕이 그랬던 것처럼 ‘고좌우이언타(顧左右而言他)’로 얼렁뚱땅 넘어간 일은 없었을까.
남에게는 ‘듣는 귀를 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얼마나 듣는 귀를 열어놓고 기자 생활을 해 왔는가.
또 바르지 못한 길을 지적하면서 과연 얼마나 바른 길을 일러 주었는가. 그저 잘못된 것을 흉보고 비난만 하지는 않았었는지.
8년의 세월을 돌이켜 보면서 이제 지나온 세월보다 몇 곱절 더 많이 가야할 세월 속에 혹시나 ‘고좌우이언타(顧左右而言他)’의 모습을 남기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염려한다는 것은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증거다. 희망이 있는 신문, 훗날 독자들로부터 그것은 ‘아! 시민일보’였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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