桀犬吠堯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3-01-09 18: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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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승 편집국장 {ILINK:1} 개는 주인만을 알고 그 외의 사람에게는 사정을 두지 않았다는 뜻의 ‘걸견폐요(桀犬吠堯)’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열전 회음후편에 보면 괴통이란 책사가 한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항우는 남쪽을 차지하고 유방은 서쪽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동쪽인 제나라를 차지하고 있는 대왕이 어느 쪽에 가담하느냐에 따라 천하대세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한왕 유방이 대왕을 제나라 왕으로 봉한 것은 대왕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사실 한왕은 대왕을 속으로 몹시 꺼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왕을 제나라왕으로 봉한 것은 단지 초나라 항우를 치기위한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항우가 망하게 되는 날 대왕마저 신변이 위태롭게 됩니다. 그러니 이 기회에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동쪽을 대왕이 차지하고 대세를 관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입니다.”
한신은 며칠을 두고 고민했지만 결국 괴통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천하가 유방의 손으로 들어오자 유방은 한신을 없애기 위해 그에게 역적누명을 씌우고 끝내 그를 죽이고 말았다. 그 때에 한신이 “나는 괴통의 말을 듣지 않았다”며 운명을 한탄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유방은 괴통을 잡아들여 “네가 한신에게 반역하라고 시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고조의 물음에 괴통은 태연하게 “그렇습니다.

신이 반역하라고 일러주었는 데도 그 철부지가 제말을 듣지 않아 결국 스스로 몸을 망치게 된 것입니다. 만일 그가 신의 계책을 받아들였다면 폐하도 그를 어찌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화가 치민 유방이 그를 기름 가마에 삶아 죽이라는 무시무시한 명령을 내렸다. 그 때에 한신이 한 말이 바로 ‘걸견폐요(桀犬吠堯)’였다.

“도둑놈의 개도 요임금을 보고는 짖습니다. 당시 저는 한신만 알았을 뿐, 폐하는 몰랐습니다. 폐하를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을 잡아다 죽이겠습니까.”

그의 말에 유방은 과연 옳다고 생각되어 그를 곱게 돌려보내 주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이후 각 당은 개혁이라는 ‘불씨’가 붙어 논란이 한창이다.

물론 정당 개혁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개혁 논의는 흡사 대선 공과에 따른 ‘상벌’처럼 비쳐져 그다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누구는 어느 진영에서 어떻게 말을 했다는 등, 누구는 우리편이 아니었다는 등등의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사실 상대편에서 우리편을 보고 질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행위를 했다고 해서 유방이 괴통을 죽이려고 했던 것처럼 그를 미워한다면, 세상의 절반 이상을 미워해야 할 것이다.

그처럼 슬픈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선거는 끝났다. 이제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모두 과거의 비난은 잊어야 한다. 선거 당시의 앙금을 가지고 갈등을 지속시켜 나간다면 바른 정치의 모습이 아니다.

털어낼 것은 털어내 버려라.
만인으로부터 어진 임금이라는 칭찬을 들었던 요임금도 도둑의 개로부터는 짖음을 당한다. 그러나 그 개도 맡은 바 소임을 다한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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